녹차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화개 골은 녹차의 본고장으로서 1년 중 가장 바쁜 때입니다. 오죽이나 일손이 필요하면 누운 송장도 일어나서 일을 해야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올해는 날씨가 늦게까지 추운 탓에 다른 해보다 늦은 편이지만,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푸른 잎을 간직한 가지마다 햇잎을 밀어 올리며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입니다.

동네에서 가장 왕건달인 나조차 녹차가 나올 때는 바쁩니다.

나는 차를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집 울타리가 조금 두꺼운 정도의 차나무로 심어져 있어서 그것을 혼자 따다가 덖는데 일이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차밭에 올라가 하루 종일 찻잎을 땁니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후딱 먹어치우고 해질 때까지 딴 찻잎은 밤에 덖어야 합니다.

만만찮은 온도의 차 솥과 그날 딴 찻잎으로 시름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려서 어떤 때는 밤을 꼴딱 새울 때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음날 또 일을 해야 하니 무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번번이 놓치고 맙니다.

나야 차를 많이 하지 않으니 내가 집에서 마시는 것과 내 차만 마시겠다는 사람들에게 조금 판매하는 정도지만 이곳의 대부분의 집들은 차와 관련된 일을 하며 거의 모든 땅에 차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산은 물론이고 밭에도, 심지어 논에까지 차나무뿐입니다. 그동안은 힘든 농사일보다 차나무가 부가가치가 높아서 모든 논밭에 농작물이 아닌 차나무로 농사를 대신 했고, 산이 어느 정도 되면 군에서 차나무 심기를 권장하며 지원까지 해줬다고 합니다. 한동안 차로 인해서 힘든 농사일 하지 않고 편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차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차나무가 부가가치가 높다고 하니 이곳 화개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 다 차나무를 심었고 대량 생산하는 곳도 생기며 과잉 생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차가 잘 팔리지 않으면 차 생산자들도 문제지만 논밭에 차나무를 심어 가꾸는 농가가 타격이 더 심합니다. 몇 년을 애써 가꾼 차나무는 별 쓸모없는 나무가 되고 또한 그 차나무가 논밭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농작물을 심을 수도 없고, 참 딱한 노릇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군에서는 아직도 산에 차나무를 심겠다면 지원을 해준다고 합니다. 약삭빠른 농가는 몇 년을 키운 차나무를 뽑아내는 수고를 하는데 나무를 뽑아야 하는 농부의 마음은 어떨지 짐작이 갑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논밭에 심어진 차나무를 보며 만약 식량난이라도 오면 차를 먹고 살 수는 없을 텐데, 차를 먹으면 배만 더 고플 텐데 하며 농담을 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될 판입니다. 모두들 논밭에는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농작물을 심고, 산에만 차나무를 심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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