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섬유업계를 주도하겠습니다”
대구상공회의소 첫 여성의원. 4개 계열회사로 제직·염색·수출까지

대구상공회의소 제16대 상공의원 선거를 마친 4월초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에는 대구상공회의소 사상 첫 여성의원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헤드라인과 함께 (주)명진의 석정달(57)사장의 사진이 경제면을 장식했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상공계우먼파워’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석정달 사장은 “능력있고 똑똑한 여성이 사회적 지위를 차지해야 뒤를 이은 여성들이 계속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경제인들을 대표하여 여성경영인들의 충실한 대변자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아울러 지역경제단체에서 여성 상공인들의 활동이 그서막을 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당선소감으로 첫 말문을 열었다.

교육공무원이었던 남편의 월급으로는 자녀교육비조차 충분히 대기가 어려웠던 사정으로 인해 섬유유통업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서 ‘명진섬유’를 창업한 것이 지난 82년. 창업한지 16년만에 계열회사 3개에 35명이었던 직원이 3백20명으로 늘고 연 매출 2백억원 규모로 사업을 확장시키기에 이르렀다.

회색빛 작업복에 감색 바지, 흰색 운동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석정달 회장은 “여성에게 일을 시켜도 앞자리에 내세우지 않는 기업풍토”를 비판하며 “여성인력 활용이야말로 기업발전과 더 나아가 경제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는 확신에 찬 발언을 들려주었다.

결국 앞자리에 점점 더 나아가기 위한 몸짓의 하나가 바로 상공의원으로 출마하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직과 염색, 날염까지 자체 제작해 내수는 물론 일본, 미국, 중남미로 수출까지 하는 섬유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석정달 사장은 직원과 바이어, 고객을 위한 철저한‘신용’을 바탕으로 기업을 꾸려왔다. 신용과 더불어 장사꾼으로서 그가 부린 고집이라면 ‘손해 보면서까지 팔지는 않는다’는것.

다품종 소량체제로 바꾸면서 최근에 개발해 유행시킨 여성용 란제리천을 수출할 때도 수출액이 1백만불을 넘지 못한 것은 ‘팔고 보자’는 식의 판매는 절대 하지않는 석씨의 고집 때문이었다.

대구광역시 내 2백여개의 섬유업체 중 여성이 경영주로 있으면서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업체는 30여 업체로 추산된다. 이중 명진섬유의 석정달 사장은 ‘섬유업계의 여걸’로 통하며 섬유산업의 불황에도 흔들림없이 주력업체인 명진섬유를 비롯, 명진산업, 명진코퍼레이션, 명진화섬 등 4개 기업운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석정달’이라는 이름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도 많다. 세무서장이 갑자기 불러들이는 바람에 부랴부랴 세무서로달려간 그에게 세무서장은 “누가 경리직원 오라고 했느냐’며 호통을 친 일도 있다.

석정달 사장의 사업수단은 어머니로부터의 대물림이었다. ‘ 대상인’으로 석사장이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는 한국전쟁 후 전라도에서 쌀을 사서 서울에 갖다 파는 일을 했다.

쌀을 사기 위해 돈을 싸서 광주리에 이고 몸빼바지가 아닌 반듯하게 다린 모시한복을 입고 나가시던 어머니 모습을 석사장은 아직도 인상깊게 간직하고 있다. 어린시절 석사장에게 ‘여장부’로 비쳐졌던 어머니 덕분에 학교숙제는 못해도 어머니의 한복빨래며 다림질은 반드시 해놓아야 하는 숙제였다.

섬유공학과를 전공한 그는 현재 경북대 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과정 3학기째에 접어들고 있다. 대학교 1학년때 결혼하는 바람에 학업을 그만두었던 그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학부를 마쳤다.

실제로 그의 사무실에는 책상이 2개다. 하나는 업무용이고 하나는 전공공부와 리포트를 준비하는 학습용이다. 집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업무 틈틈이 책을들여다 볼수있게 하기위해서다.

그에게 많은 힘이 되었던 남편과의 사별이 경영의지를 잃게 할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경기불황에 허덕이는 가운데 3백20명의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그는 언제까지 넋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아직까지 염색기술만큼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석사장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검정색이라도 여러 색을 낼수 있는 기술개발이다. 또 아주 얇은 천의 경우 염색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색깔이 일정하게 나오도록 하는 기술개발도 연구과제다. 그때문에 본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염색기술연구소의 출입이 요즘 부쩍잦다.

석정달 사장은 공식행사 외에 외부와 점심 약속을 절대 하지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내 입에 맞아야 직원들 입에도 맞을 것 아니냐”는 석사장은 식사만큼은 직원 복지중에 가장 신경쓰는부분이다.

기자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직원 하나가 손님 대접한다며 생수를 떠다가 놓았다가 야단을 맞은일이 생겼다. 이유를 들어보니 식당에 끓인물을 놓아두었는데 그 물을 안 가져오고 일부러 생수를 사왔다는 것이다. 사장이건 직원이건 똑같은 물을 먹어야지 사장이라고 직원들과 다른 물을 먹는 것은 직원들에게 괴리감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석사장의 설명이었다. 결국 그 물을 도로 가져가라는 석사장의 호통을 취재팀이중간에 말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철저하게 직원들과 함께 하겠다는 석사장은 그러나 음식 낭비는 절대로 안한다. 식당에 오래된 김치가 많이 남았는데 직원들이 신김치라고 젓가락을 안대는데도 다 먹기 전까지는 절대로 새김치를 담지 말도록 주방에 엄명을 내릴 정도였다.

명진섬유의 97년은 수출 주력의 해다. 그러나 이 목표에는 걸림돌이 있다. 중소기업에게 가장 애를 먹이고 있는 것이 바로 ‘쿼터제’. 아무리 주문이 밀려와도 쿼터가 없으면 수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에서 쿼터를 사서 수출을 해야 할 형편인데 그러면 결국 이득을 챙기는 것은 대기업이다. 대기업은 쿼터만 팔아도 가만히 앉아서 큰 이윤을 남기니 남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쿼터를 해제하는 것이 섬유업계의 불황을 타계할 수 있는 길임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이가 바로 석정달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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