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큰 빚 졌는데 이제 어떻게 갚나요?`”
아내 잃은 신혼 남편의 통곡

오랜만의 공휴일. 늦잠을 자고 일어난 채완석(29)씨는 모처럼 오늘 하루 아내와 쇼핑도 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결혼 1년 반. 그동안 시집 뒤치닥거리와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통에 제대로 가꾸지도 못하는 아내 김미성(26)씨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쁘다며 집을 나서는 아내를 말릴 수는 없었다. 아내는 강의를 나가는 학원의 학생이 계속 결석해 성적이 처지는 바람에 보충 과외를 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그에게 내민 수첩에는 “5월 14일 석가탄신일 오전 12시 과외. 돈암동 한진아파트 209동옆 동사무소에서 1백미터”가 적혀 있었다.

과외 약속 메모를 확인하고 더이상 붙잡을 수도 없었던 그는 그동안 미뤄온 집안 청소와 겨울옷 정리를 오늘 하루안에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대청소를 끝내고 아내의 과외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돈암동에 마중을 나가겠다는 말을 했다. 오랜만에 장인댁을 들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가는 길에 장인어른과 아내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사들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인매장을 들러 아내의 옷을 골라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과외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 아내를 집 앞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며 과외가 끝나는 대로 전화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내가 돈암동 버스를 타는 것을 지켜보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시계는 11시 30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로부터 3시간 후. 청소를 대충 끝내고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채씨는 장인 김영호씨(63)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참변 소식을 제일 먼저 안 사람은 장인이었다. 성북구 경찰서 직원이 김씨의 의료보험카드를 발견하고 곧바로 장인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돈암동 아파트 축대가 무너졌는데... 그 앞 공중전화박스안에서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나 봐...”말을 제대로 못잇는 장인의 전화를 도중에 끊고 허겁지겁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종이처럼 구겨진 공중전화 박스. 아내의 시신은 벌써 병원으로 실려가고 없었다. 흙 묻은 갈색 가방을 껴안은 채 넋을 잃었다. 중학교 3학년 영어자습서와 빽빽한 학원수업 스케줄이 적힌 수첩, 채씨의 사진이 든 가방만이 사고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3년간 시아버지 병 수발 후

95년 12월 결혼

사고 일주일 후인 20일 고대 부속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채씨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그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이제서야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며 말문을 연 그는“아내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는데, 이제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며 말끝을 흐렸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말 무렵. 채씨는 제대 후 복학한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 2년생이었고 김씨는 동덕여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친구 소개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시작은 그러나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그 무렵 현장일을 하고 있던 채씨의 아버지가 작업 도중 하반신 마비로 주저앉은 후 몇개월이 지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3년간의 병상생활. 끝내 숨을 거두신 아버지. 그동안의 모든 뒷바라지는 김씨의 몫이었다. 일체의 간호를 김씨가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큰 소리 내지 않고, 힘든 기색이라고는 전혀 표내지 않던 김씨도 장례식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를 하는 동안 채씨 이상으로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가 됐기 때문이었다.

상을 치르고 아버지의 유언대로 95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 채씨는 대학원 2학기였고 김씨는 졸업후 학원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채씨의 대학원 진학은 교수가 되기를 희망했던 아내 김씨의 권유 때문이었다. ‘교수의 꿈’은 두사람의 약속이었다.

“이달만 지나면

좋은 소식 있을텐데”

결혼 6개월 전 보증금 2천만원으로 얻은 창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신혼 살림을 꾸렸다. 방 하나, 부엌 하나가 전부. 그래도 “집을 살 때까지 참아보자”며 “지금은 큰집보다 둘만의 집이기만 하면 되지않느냐”는 아내의 말은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만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방대학에까지 강의를 나갔다. 2학기까지는 조교생활도 하면서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기도 했다. 아내 역시 학원 강의며 아르바이트며 가릴것 없이 뛰었다. ‘조금 쉬고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권유도 3개월을 넘기지는 못했다. “언젠가 둘만의 집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꿈”은 젊은 새댁을 더 바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덕분에 이번달만 지나면 대학원 등록금과 전세금 때문에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작년 초 대학원을 졸업하고 컨설팅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채씨에게 전임강사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던 학교 교수님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는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꿈 많던 이 부부에게새로운 생활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달만 지나면 빚도 갚고, 저축도 하고, 여유도 가질수 있게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로... 먼저 가버리다니...” 그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사고후 일주일 지났으나

장례식도 못치뤄

사고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신을 차렸다는 그를 더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아직까지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일체의 성의를 표하지도 않고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장인 김영호씨도 이때문에 가장 가슴이 아프다.

김씨의 유가족은 아파트 시공업체인 한진건설 측 이유가 족에게 보여준 무성의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보상규정을강요하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회사의 책임자가 정식으로 찾아와 조의를 표하고 그 다음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는 이야기다. 20일 현재 유가족과 회사측은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해 장례식과 피해보상과 관련해 일체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채씨의 지갑 속에 꽂힌 스물여섯 김미성씨. 그의 해맑은 웃음이 남은 사람을 더욱 슬프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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