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발이가 중간고사를 보고 오더니 자기는 아무래도 ‘수학과외를 해야할까 보다’고 울상이다. 도대체 절반밖에못 맞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반을 맞은 것도 자기실력이 아니고 찍었는데 운좋게 맞았을 뿐이라면서. 어발이 아빠는 걱정되는지 ‘그럼 어떻게 하지’ 그러고 나는 속으로 ‘드디어…’ 라고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시험봐서 성적 안나오면 자연스럽게 과외하겠다고 나오고 그 이야기를 듣는 부모들은 그럼 과외를 시켜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회. 이러니 한해 과외비가 20조를 육박하고 벌써 올 상반기 사교육비가 10조를 넘어서게끔 되는 모양이다. 며칠전 신문보니 서울에서 중고생을 둔 가구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37만 8천원. 우리집은 현재는 과외비 지출이 없는데 어발이 녀석이 자기도 수학과외를 해야겠다고 나왔으니 언제 과외비를 지출해야 될지 모르게 되었다.

과외를 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은’사회

중학교때는 학교 공부가 수준이 안맞는다고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시험보면 다 맞고 다녀서 4지선다형의 귀재가 되는게 아닌가 걱정이더니 이제는 배운것도 반밖에 못 맞아서 과외를 받아야겠다니… 어발이 녀석 ‘외국어고는 과학고 떨거지 학교인가봐. 수학 과학 잘하는 애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라면서 투덜거렸다. 과학고를 가고 싶었는데 실력이 안되서 (사실은 실력이 아니라 자격요건임) 외고에 온 애들이 수두룩하다나.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에서 과학고에 갈 수 있는 자격요건이란게 모든 과목에 우수한 준재들을 뽑는 기준이지 과학영재를 뽑는 기준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어발이 중학교에서도 과학고에 가면 알맞을 수학 과학에 뛰어난 아이들은 자격미달로 과학고 원서도 못냈다. 수학 과학에 전혀 자질이 없는 어발이는 전과목 성적이 고루 좋아 과학고 응시자격이 주어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우리의 학교 교육은 참 황당하다.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 너무 실력 차가 큰 아이들끼리 한반에 있어서 제대로 수업을 할 수가 없고 공부 잘한다고 해도 실력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애들이 따로 학원을 다녀야 하고 못하는 애들은 알아 듣지 못해서 학원을 다녀야 한다. 그리고 수학 과학에 뛰어나도 과학고에 갈수 없으면 외국어고에 오고 자연계 적성이 아니어도 성적이 되면 과학고를 가는 사회. 외국어고에 와서 수학을 따라가기 위해 과외를 해야되고. 대학입시문제를 쉽게 낸다고 과외가 없어지지 않는다. 쉬우면 만점을 받기 위해 과외를 할 것이기 때문에. 내신성적 반영율을 높인다고 과외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내신을 올리기 위해 과외를 할 것이므로. 과외를 해야 할 이유가‘너무 많은’사회. 아니 과외를‘권하는’사회라는 표현이 맞겠다.

동정받는 월 30만원짜리 학원 과외생

과외가 금지된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마쳐서 과외를 해본 적이 없는 큰아이는 우리교육은‘고비용 저효율’그 자체라면서 과외성적이란‘거품’이라고 과외 무용론을 편다. 그런데 며칠전 고3짜리 딸을 둔 대학동기를 만났더니 남편한테 딸 과외비로 1천5백만원을 받아놓고 곧 쪽집게 과외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월 3백만원씩 한 5개월 쓸 작정인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큰애가 “불쌍한 물보라(고3짜리 4촌의 별명). 월 30만원씩 주고 학원과외를 하는 불쌍한 물보라”라고 중얼거렸다. 언제는 과외성적은 거품이라고 해놓고서 세상에 과외비 월 30만원씩 쓰는 고3을 불쌍하다고 하다니 말이 되냐고 했더니 그래도 불쌍한 것은 사실이래나.

아이들 사이에서 과외비를 얼마 쓸 수 있느냐가 상징하는 것은 집안의 능력, 투자로 환산된 부모의 애정, 그리고 그 과외비에 비례해서 올라갈 성적에 대한 환상… 헤아릴수 없이 많으므로. 하기는 그 대학친구는 큰딸도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안했으면‘절대로’원하는 대학을 못 갔다고. 생각다 못해 어발이에게 형에게 수학과외를 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점잖게 거절했다. 우리집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곧 수입의 몇 프로를 과외비로 쓸 것인가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다!!

대세에 밀려‘힙합바지는 이제 네가 빨아’할 뿐

어발이가 중간고사를 끝내고 가져온 고민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났으니 용돈 좀 달라고했다. 이번에는 영화값이 아니었다. 시장으로 옷을 사러간다나. 백화점에서 바지 한벌 살 돈으로 긴바지, 반바지, 티셔츠 여름옷을 몽땅 해결해 오겠다면서. 자기는 게으른 엄마 때문에 언제나 철늦은 옷을 그것도 겨우 얻어 입고 다닌다고 투덜거리더니 자구책을 강구한 모양이라 돈을 주어보냈다. 스승의 날이라고 휴일을 맞아 중3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친구들이랑 시장을 헤매다 저녁 8시에야 집에 왔다. 사온 물건은 허리를 엉덩이에 걸치는 힙합바지 1개, 러닝셔츠 2개, 그리고 잠옷을 하면 알맞을 엉덩이를 덮는 러닝셔츠 2개, 그리고 양옆으로 푸대만한 주머니가 달린 반바지. 다른건 그런데로 넘어가겠는데 도대체 그 힙합 바지를입고 어떻게 할 것인지, 어디를 소제하고 다닐 것인지. 이야기하고 따질려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같이 간 친구 네명중 자기가 제일 늦게 힙합 바지를 산셈이라니.

그러고 보니 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외와 함께 빠지지 않는 화제가 힙합바지였다는 생각이 그때야 들었다. 엄마들은 이해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말리는 일은 역부족이고. 내가 할수 있는 소리는‘힙합바지는 이제 네가 빨아’그것 뿐인 듯 했다. 그러고 보니 과외비도 ‘네가 알아서 해라’해버릴까? 과외와 힙합바지- 요즘 중고생을 둔 엄마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 두가지 고민에서 나라고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엄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별로 없다. 대세에 밀리는 일밖에는.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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