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금융관계 기구의 세계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영어로만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기관장이 개회사를 한국어로 하게 되었다. 중요한 행사인만큼 나는 여러차례 그 비서실과 연락을 취하며 연설문은 미리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결국은 회의 당일 아침까지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대답만 계속 듣다가 아무런자료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연단에 올라선 연설자는 부시럭거리며 양복 안 주머니에서 연설문을 꺼내더니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는것이 아닌가!

이럴때에야 말로 필자처럼 수백번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통역사의 쓸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필자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같은 속도로 숨도 제대로 못쉬면서 일사천리로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난후 마이크를 딱 끄고나니 누구를 향한것인지도 모를 ‘X새끼’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내뱉고 보니 지나친 폭언이지만 그순간의 내심신은 정상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변명하고 위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의 비서가 통역실에 들어와서 바로 뒤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 비서는 필자의 말을 듣고 까무러칠듯이 놀라 튀어 나가 버렸다. 그 얼마후 상공인 신년인사 리셉션에서 바로 그‘원수’를 만났는데 필자가 그때 자신의 연설을 통역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항의가 없는 것을 보니 비서가 필자의 폭언을 일러 바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참가인의 국적에 따른 어려움이 동반될 때도 있다. “ 일본인의 입을 열게 만들고 인도인의 입을 다물게 만들 수 있으면 그 회의는 대성공” 이라는 농담이 있다. 국제 무대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은 예정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발언을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나중에 개별적으로 묻거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에서는 국제회의와 여론조사가 제대로 안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것 역시 솔직하고 정확하게 의사표현을 하지않는 우리국민들의 일반적 태도를 꼬집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보다 심해 의사표시에 극도로 소심하고 신중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하고 느껴집니다 마는”이라든가“...라고 보인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는 등 빙빙 돌리는 언어표현을 해서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국제 무대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은 에정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발언을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나중에 개별적으로 묻거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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