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의 의례에서 부계혈통 계승자에 의해 대표되고 여성은 그 그늘에
가리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는 성과가 무색해진다.

흔히 여성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고 몇몇 분야에서는 획기적으로 진보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곳에서 여성들은 열심히 일은 하는데 중요한 자원이 배분되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 교회, 정당, 가정 등 실제로 여성의 노력과 헌신으로 움직이지만 대표를 비롯한 중요한 직분은 모두 남자로 채워진다.

경제적인 환산치가 없다는 이유에서 가사노동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된다.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분명히 엄청나게 정신적 육체적인 일을 했는데 결과는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여자의 노동은 그 연장선 상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어디서건 여성에게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봉사의 노동이 기대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 노동에 보상하지 않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여자는 보일 수도 들릴수도 없는 대표적인 약자집단으로 존재한다.

가끔 상가를 찾을 때면 이런 여성의 처지를 실감하게 된다.

얼마전 본지의 필자가 시모상을 당해 삼성의료원을 찾았다. 본인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탓에 병원이름과 상을 당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알지 못한 채 문상에 나섰다. 삼성의료원 영안실은 2개층에 걸쳐 총 18개실의 영안실이 있다. 각 실마다 문상객이 줄을 이으니 영안실 안은 매우 복잡했다. 여기서 고인의 며느리를 찾을 공식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부딪쳐 난감했다. 남편의 이름도 모르고, 또 안다해도 어머니이니 성을 물려 받지도 않았을 터이니 성을 통해 상가를 찾을 확률은 없는 것이다. 결국 2개 층을 다 뒤진 끝에 ‘눈썰미’ 좋은 사람의‘색출력’에 힘입어 상복입은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여성의 첫마디는 ‘여기서 나를 어떻게 찾았냐?’는 것이었고 우리의 대답은 ‘다 뒤졌지요.’였다.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일을 통해 다분히 공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일 경우 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자주 생긴다.

이 일이 있고난 이후에는 한 전문직 여성이 부친상을 당해 문상갈 일이 생겼다. 이 여성은 사회생활 경력이 오래되어 직장도 직위도 기반이 튼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신문의 부고난에서는 이 여성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고인의 아들과 사위의 이름만이 게재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사의 의례에서 부계혈통 계승자에 의해 대표되고 여성은 그 그늘에 가리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다는 성과가 무색해진다.

전통사회에서는 ‘집안 사람’이었던 여성들이 문상을 가는 일도 드물었으니 장례는 분명 남자들의 일이었을 것이다. 제례가 남자들의 일이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여성들은 ‘집안 사람 ’에서 공식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활동한 지가 꽤 오래 되었고 정부에서도 여성의 사회진출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회진출이라는 것이 단순히 노동력의 매매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두 사람이 사는 일이라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또 하나의 ‘준’ 가족사를 발생시킨다.

여성들이 문상을 가고 문상을 받고 하는 일도 여성의 사회진출로 일어나는 필연적인 사회관계다. 그러나 몇번의 경험으로는 여성들이 이런 사회관계를 맺기에 우리 사회는 많이 불편하다.

우리 문화에서 장례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기에 장례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소한 시비 이상으로 근본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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