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가라사대
꽃들이 가라사대
  • 카피라이터·현대방송홍보국장
  • 승인 2017.09.20 13:35
  • 수정 2017-09-20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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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계절이다.

산에도 들에도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파도가 향기롭게‘철석 철석’출렁이고 있다.

거리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마저도 꽃으로 보이는 듯한 느낌.

그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세계 꽃 박람회’가 열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일산 신도시 호수공원의 꽃박람회 행사를 맡아 일하고 있는 E국장은 나와 10여년을 함께 일해 온 직장동료.

몇달 전부터 준비작업에 동분서주하던 그가 며칠전 전화를 했다.

“이제 꽃이라면 멀미가 나요. 꿈속에서도 행여 꽃을 만날까 도망다닐 지경이예

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포복절도 하였다.말하자면 그는 수백만 수천만 송이의 꽃들에게 질렸다고 나에게 하소연하고 있는셈인데 … 나는 깔깔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의 고통에 동참하기엔 내용이 너무나 희극적이 아닌가. 그렇게 예쁜 꽃들에게 넌더리가 났다니? 과연 꽃들이 싫어질 수 있는 대상인가?

나는 아마도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상상속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세계 다이아몬드 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지천으로 깔려있는 다이아몬드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떠할까? 수백만개, 수천만개의 다이아몬드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갖고 싶어 탐을 낼 수 있을까? 누군가 이렇게 말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제 다이아몬드라면 멀미가 나요. 행여 누가 다이아몬드를 줄까봐 겁이 다 난다니까요.”

이런 상상은 비록 상상일 뿐이지만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가.

그래서 나는 ‘희소가치’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숫자가 적어야 비로소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조물주는 우리를 모두 다 다르게 만들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남이 하면 아무 생각없이 쫓아가고 따라하는 게 대다수 사람들. 나혼자 따로 가면 뭔가 낙오하는 것같아 불안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없어서 일 것이다. ‘뭐가 유행이다’싶으면 와르르 떼지어 그 유행에 편승한다. '한마리의 어리석은 견공이 찌그러진 달을 보고 짖을 폼을 갖추자 백마리의 견공들이 일제히 따라 짖는다’는 옛 말, ‘犬吠形百犬吠聲’을 연상시킨다.

어찌 그뿐인가.

‘한마리의 눈 먼 까마귀가 북북서로 머리를 돌려 날개짓을 하면 백마리 천마리갈까마귀떼가 북북서로 날아간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말하자면 맹목적 부화뇌동인 셈이다.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조차도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싶으면 속성재배로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신혼여행도 해외로 해외로, 아이들 생일잔치도 호텔로 호텔로!

물론 모방심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겠지만 우리네가 유독 심한 것 같다.

한국인의 특성을 재미있게 표현한 이야기 하나.

미국의 억만장자가 신문에 광고를 냈다.

“파란 얼룩말을 발견한 사람에겐 1백만달러를 주겠다.”

그 광고를 보고 독일인은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파란 얼룩말에 대한 자료를 찾는다.

영국인은 아프리카 지도를 사서 우선 파란 얼룩말이 살고있는 지형을 연구한다.

프랑스인은 어떠한가. 그는 당나귀를 한마리 구해서 파란색 페인트칠을 한다.

일본인은 밤새워가며 꼼꼼하게 당나귀에 파란털을 하나씩 하나씩 심어나간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은?

그는 ‘이미 백만달러는 내 것이다’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샴페인 파티를 성대하게 벌인다. 그리고 파란 얼룩말잡기 범국민 운동 발기대회를 연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우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세계 꽃박람회를 보면 이 우스개속에 담겨진 뼈를 발견할 수 있다.

꽃 하면 느껴지는 건 향기.

그러나 연일 신문, 텔레비젼을 장식하는 뉴스에서 꽃박람회는 짜증박람회요 바가지박람회라며 악취를 풍긴다.

한마디로 너무나 장사속이다.

콜라 한잔에 2천5백원이라니? 부스러기 아이스크림 하나에 1천원이라니? 먼 곳에서 꽃을 보겠다고 꿈을 갖고 찾아온 선량한 관람객들은 바가지를 쓰다 못해 아예 껍질까지 벗기고 떠난 셈이다.

그러나 볼 것 없고 갈 곳 없는 우리나라의 착한 사람들.

그들은 나쁜 소문에도 불구하고 주말엔 20만의 인산인해가 그곳을 찾아온다. 나는 오도가도 못하게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의 북새통에서 꽃들의 비명을 듣는다.

“제발 사람들이여, 우리를 그냥 꽃으로 살게 해달라. 우리가 도대체 무얼 잘못했는가. 왜 이렇게 뽑았다가 심었다가 곤두박질을 치는가! 우리는 조용히 피었다가 향기롭게 지고싶다.”

조금은 철학적인 가냘픈 꽃한송이가 자기 옆의 꽃에게 속삭이는 말도 들린다. “이제 인간이라면 멀미가 나. 꿈속에서도 쫓아올까봐 아예 빨리 시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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