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해외생활 후 모 의과대학 주임교수로 부임하면서 모국의 구수한 신토불이 토속 맛과 옛 자취를 더듬는데 다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체면차리기,‘ 척’하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귀국 당시 실감있게 느껴 본 일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간곡한 주례 청탁을 받았다. 한 대학 주임교수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러한 신분을 가진 사람을 한번 결혼 주례로 내세우는 것은 어느 신랑, 신부, 양가 집안에게도 흐뭇한 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사회, 정치계 등의 저명인사를 주례로 모심으로써 그 분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려는 경향도 적지 않다고들 한다.

나는 결혼식에서 주로 신부, 목사, 법원 판사들이 절차에 따라 식을 진행하고 가족 친지들이 축복을 듬뿍 던져주는 것만 보아온 탓에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 그러나 수천번의 거절과 사양이 오히려 오만과 오해로 이어지는 실례가 되는 것 같았다.“ 그 까짓것 별것 아냐, 몇 마디만 하면 되는데 뭐 그렇게 비싸게 굴어, 눈 딱 감고 한번 해 준다고 해. 한국도 이제 많이 달라져서 그전 같이 주례가 일장훈시하는 시대는 아니란 말이야”하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귀띔이며 성화였다.

그렇지만 간혹 친구 자제들의 결혼식에 가보면 주례하시는 분이 항상 그 젊은 신랑신부에게‘잘 살아라’는 충고와 기대의 무거운 책임과 부담스러운 짐을 안겨 주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러한 말씀은 다 옳고 좋은 내용이다.

이번엔 그와 비슷한 말을 하여야 할 단상에 내가 서게 되었다. “만물이 소생하고 화창한이 봄 날, 다망하신 중 왕림하여…”로 시작되는 한자 섞인 축사 원고를 만들어 전날 밤 몇 번 연습도 하여 보았다. 당일 막상 열려는 순간 ‘가식과 수식의 위선자’라는 장막이 나를 뒤집어 씌우고 간신히 외워 두었던 문구가 거품같이 전부 다 사라져 버렸다. 관례와 형식을 벗어나 나름대로 늘 생각하여 오던 무의식의 바탕이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주어진 결혼 선서 순서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이상한 내용의 축사를 하였기에 쑥덕 공론이 일기 시작하였다.

누구나 어른들은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지 결코 잘 살라고 해서 그들이 잘 살고 행복하여 지는 것은 아니다. 신혼 부부들은 자유로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존경하고, 그들 만의 뿌리를 먼저 튼튼하게 박아 놓으면서 주위의 일을 화목하게 선처하여야지 처음부터 약한 뿌리는 외풍에 흔들려 곧 쓰러지기 쉽다. 80년대에 미국을 방문하러 온 젊은이들에게 자주 이러한 질문이 여담조로 던져지곤 했다.“ 부득이한 극한 상황에서 존경하는 어머님과 사랑하는 부인, 둘 중 한 사람을 택하여만 한다면 어느 편을 들겠는가?”라는 질문이다. 대부분 나를 낳으시고 키워주신 어머님으로 기울었다.

그때의 나의 의식구조는 이미 부인이 우선이었다. 또한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에 반론을 일으켰다.‘ 부부는 이심이체’라고! 일심동체가 되려면 어느 쪽이든 하나가 희생되고 완전 흡수되면 말없고 탈이 없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화평할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파뿌리가 되어 그대로 시든다고 생각하면, 여성의 경우‘홧병’‘한’등이 그저 남의 일만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부부도 민주주의식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상의, 양보, 합의를 보며 두 몸이 각기 보태어 2백퍼센트의 힘을 내는 것이 좋지 하는 역설이었다. 그 밖에‘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는 정말 사실인가?라는 반문을 했다. 이러한 궤변(?)은 우리 사회에 아직 먹혀들지 않았으며 하물며 결혼식장에서는 언어도단이라는 눈치를 챈 후부터 주례의례를 결사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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