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에 자율학습 끝내고 다시 학원 가서 12시나 1시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술집도 심야 영업 제한이 있다는데 학원은 영업제한도 없나요”

 

 

요새 어발이가 좀 조용하다 했더니 시험이란다. 밤10시가 넘어 학교에서 지친 얼굴로 돌아와“여기 애들 장난이 아니야”그런다. 왜? 실력이 굉장하니? 못 따라가겠어? 걱정되어서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눈동자가 다 풀려있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도 공부하느라고 통 잠을 안 자는 모양이란다. 수업시간에 반쯤은 잔다는 것이다. 자기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졸다가 선생님한테 들킨다나. 그리고 덧붙이기를 “내 뺨이 불쌍해” 그러는 것이었다. 깜짝 놀래서 “아니 졸다가 들키면 빰을 맞아?” 그랬더니 그게 아니고 너무 졸려서 자기가 자기 뺨을 꼬집는다나. 으휴. 야, 그런 바보가 어디있니? 잠은 자고 공부를 해야지. 무조건 밤 11시에는 자라고 했더니 그렇게 자고는 도저히 숙제도 해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매일 밤 12시까지는 앉아 있어야 숙제를 끝내갈 수 있다고 우긴다.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면 5시간 반밖에는 못 자는데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4시간만 자야된다고 그랬다는 것이다. 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했다면서. 이른바 4당 5락의 법칙이 여전히 신화처럼 전수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발이가 중학교 입학했을 때도 학부형 회의에 갔더니 설명회에 나오신 어느 선생님께서 4당 5락을 학부모에게 강조 하면서 이제는“국민학생이 아니므로 자고 싶다고 자게 하면 반드시 후회한다”고 4시간만 자고 공부하게 하라고 했었다. 나는 그때 일어서서 중학생 아이들이라면 최소한 7시간은 자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난척 한다고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거기다가 그때는 어발이의 성적이란게 별로 내놓을만하지도 않아 설득력도 가질 수 없었을 테니까 (속으로 어발이가 1등이라도 한다면 이럴 때 말발이 서는건데… 아쉬워 했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발이에게 부탁했었다. 학교 가서는 공부 만하라고. 놀고 싶으면 놀고 싶을수록 공부는 수업시간에 해결해 버리라고. 그리고 밤10시부터 자도록 권했다. 특히 시험 전날은 무조건 재웠다. 자고가면 최소한 아는 것은 쓰는거라고. 모르는 것까지 억지로 맞을려고 졸면서 외울필요 없다고. 효과가 있었는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공포의 4당 5락을 지키지 않고도 어발이는 아주 괜찮은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러한 중학교 때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어발이에게 공부 잘한 아이들이 모여있는데서 4당5락의 신화는 여전히 스트레스를 주는 모양이다. 난 다시 한번 아이에게 잠을 자고 다녀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으며 4당 5락은 말도 안되는 소리임을 역설했다. 그런 이야기는 선생님 말씀 들을 필요 없다고까지 이야기 해버렸다. 내친김에 한창때 잠을 충분히 자야 머리가 좋아진다고 거짓말(?)까지 해버렸다(전문가에게 확인은 못했지만 사실일지도 모른다).

엄마들이 그런 일에 자신있게 말을 못하는 이유는 그러다가 혹시 정말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하나 하는 걱정때문인 것 같다. 우선은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최악의 경우 성적이 좀 떨어진들 어떠랴라고 마음 먹어야 한다. 도대체 한참 크는 아이들이 4시간씩 자서 어떻게 심신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중고등학교때 충분히 잔 어른들의 40대 사망율이 낮다는 통계라도 나와야 엄마와 학교는 믿을런지? 우리교육의 큰 문제점으로 사교육비, 촌지 등이 늘 떠오르는데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교육의 파행성은 도처에 있는 셈이다.

‘걱정한대로’어발이가 오더니 시험끝나면 자율학습은 밤10시로 다시 연장할 것이라고 한다. 9시로 단축한지가 한달밖에 안됐는데. 자율학습 일찍 끝내봐야“집에와서 놀기만 하니까”라고 덧붙였다. 아니“놀기만”하다니? 그럼 집에 와서는 자기만 해야 하나? 그것도 별로 충분하지 않게.

자율학습 시간이 1시간 단축되어 밤9시에 집에 오면 그런대로 세수도 제대로 하고 좀 이야기 할 시간이 있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가족생활도 좀 더 제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9시에 자율학습 끝내면 학원으로 가서 12시 넘어야 집에 가는 학생이 많은 모양이다. 차라리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면 그때는 어중간해서 할 수없이 집으로 갈지 모르지만. 학원들이 학교가 자율학습을 단축하여 학생들을 학원으로 방출(?)하도록 여러 통로를 통해 로비도 한다는 것이다. 밤9시에 자율학습 끝내고 다시 학원 가서 12시나 1시까지 공부 하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술집도 심야 영업 제한이 있다는데 학원은 영업제한도 없나요 불평했더니 동료 교수 한 분이“그게 되겠어요?”엄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아이들을 더 공부하게 하고 싶은데. 그런데 눈에 불을 켠 사람이 엄마만일까? 입시 드라마의 제작 기획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4당 5락의 신화가 깨졌으면 좋겠다. 정치권에서 5당 4락의 신화가 깨진지는 오래된 모양인데… (국회의원선거에서 5억 쓰면 당선되고 4억 쓰면 떨어진다는 5당 4락은 옛 이야기인 모양이다. 며칠전 한 주간지 칼럼에서 지난 15대 총선때 모지역에서 4등으로 낙선한 후보가 6억밖에 쓰지 않아 결국 떨어졌다는 글을 읽었다. 대략 1등은 45억, 2등은 40억, 3등은 13억이었다나…). 돈 안드는 선거와 교육의 정상화 어느 쪽이 더 가능할까?

두가지가 다 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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