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평] <남자충동>
[연극평] <남자충동>
  • 이지훈/ 창원대학교
  • 승인 2017.09.13 14:07
  • 수정 2017-09-13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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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자’ 신화가 빚어낸 비극

남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다룬 연극 <남자충동>(조광화 작 연출/동숭아트센터 소극장/4월4일~6월29일)이 공연 되어 관심을 끈다.

가부장 사회는 강한 남자를 요구하고 이러한 억압에 휘둘리는 남자는 결국 진정한 자아찾기, 참남자 되기, 참인간 되기에 실패하고 가끔은 폭력과 패거리에 의존하며 사회의변종이된다.

주인공 이장정은 영화 <대부>의 꼴레오네(알 파치노 분)가 ‘패밀리’를 보호하고 마피아 조직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형태에서 ‘강한 남자’의 원형을 찾고 그를 자신의 삶의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이 남성상은 왜곡된 이미지 일뿐으로 결국 이것이 그가 파멸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장정의 파멸은 가부장 사회의 억압-예를 들면 가족을 책임져야되는-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그가 왜곡된 강한 남성상의 환상에 속았다는 데 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이다.

이 연극의 가장 약한 부분 혹은 가장 모호한 부분이 바로 이부분이다. 이장정의 죽음은, 거짓된 자기 환상에 의해 초래된 것이지 가부장 사회의 억압에 의한 것은 아니다. 연극은 따라서 가부장 사회와 강한 남성 컴플렉스가 억압기제가 되어 한 인간(남자)을 파멸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의 고뇌와 실패를 다루는 작품들이라고 해서 남성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충동>은 거짓환상에 속은 한 남자와 그 가족의 비참한 파멸을 다룬 가족드라마이다.

또한 이 연극이 본격적인 남성 연극이 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극 속의 다른 인물에게서도 발견된다. 이장정의 어머니 박씨의 이혼과 가출은 그녀의 진정한 홀로서기의 출발로 보이지 않는다. 노름꾼 남편과 뒤이은 아들의 지배가 싫어서 집을 떠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으로 까지 확대되지 못한다.

남자들의 틈바구니에 희생제물의 강한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인물이 정신박약인 달래다. 그러나 그녀는 불완전한 희생제물이다. 동네 건달의 성폭행 시도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지거나, 극의 말미에 이장정을 찌르는 역할을 함으로써 그녀의 극적 농축미와 제약은 사라진다.

형에게 눌린 나약한 남자 유정 역시 애매모호하다. 동성연애자도 아닌데 여장 남자인 단단과 동거하는 이유도 불확실하다. 오히려 그를 강한 남자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로, 그래서 불가피하게 동성연애자로 변모하도록 그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장을 하는 단단 역시 애매한 동성연애자다. 그는 고작“약한 것도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만 줄 뿐 정작 작가를 대변하고 있지 못하다. 이성애가 중심이 되는 가부장 사회에서 동성연애자는 분명 또 다른 소외된 계층으로 그들 고유의 목소리를 지닌다. 그러나 유정과 단단은 피상적인 모습만을 보여줄 뿐 필연성을 지닌 살아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이 두 남자야말로 왜곡된 강한 남성상에 대조되는 진정한 의미의 강한 남자, 혹은 강한 인간-어머니와 누이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아버지의 나약함도 수용하고, 자신의 동성연애에 대해서도 당당할 수 있는-그런 인물로 비춰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준다.

<남자충동>은 가부장 사회의 남성 억압의 정체나, 강한 남자의 의미 등 에 대한 깊은 논의를 담지 못하고 있고, 또 인물 설정에도 문제점을 내포하고있는작품이다.

하지만 남자들에 의한 남자됨의 의미를 스스로 묻는 연극으로서는 아마 첫 시도가 아닐까 한다. 바로 이 점에 이 연극의 가치가 있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자아정체성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이 즈음, 남자들 역시 이 가부장 사회에서의 남자됨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며, 이러한 우리의 고민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성 해방으로 이어지기를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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