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된 섹스돌 통해 현대인 소외 다뤄
일명 ‘섹스돌’이라 불리는 공기인형은 안에 공기를 가득 채워 넣은 사람 크기의 인형으로 남성 중심적인 성산업에서 태어난 현대 성인들의 장난감이다. 어떠한 반응도 거부도 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극히 수동적인 ‘섹스 파트너’인 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공기인형’(사진)은 공기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 부재를 이야기하는 현대판 ‘인어공주’ 이야기다.
“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가져서는 안 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 분)는 어느 날 생명의 눈을 뜨고 인간이 되어 주인 몰래 외출을 감행한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노조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신기하기만 하다. 우연히 들른 비디오 가게 점원 준이치(아라타)를 보고 사랑에 빠진 노조미는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간에 대해 배우고 사랑을 키워간다.
인형으로서의 금기를 깨버린 노조미는 ‘인어공주’가 그랬듯 예정된 비극적 결말을 향해 짧은 생을 살아간다. 생일이 뭔지, 나이를 먹는 건 어떤 것인지, 바다는 어떻게 생겼는지 등 하나하나 배워가는 노조미의 눈으로 바라보는 하루하루는 잔잔한 파스텔톤 화면 속에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어찌 행복한 일만 있겠는가. 인간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속이 텅 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절망에 휩싸인다. 결국 노조미는 깨닫고 만다.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가슴 아린 일이었습니다”라고.
인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공기인형’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감독이 표현했듯 결국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늙는 것이 두려운 노처녀, 홀로 어린 딸을 키우는 젊은 아빠, 세상을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 매일 사건을 조사해 경찰서를 찾아오는 할머니, 공원 벤치에서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 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습의 고독한 인간들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누구보다 외로우면서도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생명은 자기 혼자만으로는 완결될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안고 있어서 그 빈 곳에 타인을 채움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의 대사를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노조미는 타인의 텅 빈 속을 채우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의 순수한 사랑은 결국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사후 세계(‘원더풀 라이프’), 유기된 아이들(‘아무도 모른다’), 가족 문제(‘걸어도 걸어도’)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특유의 시선으로 포착해 온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 사회 가장 어두운 부분인 성산업 도구로부터 순수한 영혼을 포착하고 소통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그리고 눈도 깜빡이지 않는 무표정의 인형에서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사랑에 빠진 여성까지 복잡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한 배두나의 연기는 영화에 설득력을 더한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배우나, 4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