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한국 사회에는 자유가 흘러넘친다. 1980년대 후반 불어 닥친 민주화 정책의 덕택으로 정치, 언론, 사상, 표현, 집회의 자유가 대폭적으로 신장되어 국민들이 미증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자유의 확보와 향유의 폭은 거침없이 확대되었는데, 이런 자유를 수준 높게  관리할 자율적 도덕능력은 아직 잘 발휘되지 않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리의 교통사고 발생률과 사망률은 세계에서 여전히 상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기 동네 길가에서 차에 치여 다치고 사망하는 어린이 안전사고율이 세계에서 높기로 유명하고, 이혼율이 일본과 대만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노동조합의 쟁의 발생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며, 노사분쟁으로 인한 무노동 시간과 일수가 가장 많고 길기로도 유명하다.

무절제한 자유 표현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범죄율을 일본과 비교해 보면 단위 인구당 살인사건 비율이 1.7배, 강도 사건이 3.5배, 폭력사건이 38배에 이른다. 한 사람의 무절제한, 통제되지 않은 자유가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식당을 포함한 많은 공공장소에서 ‘빨리 빨리’ 하는 재촉문화가 빈번하고 냄비처럼 금방 달아오르는 성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잦아서, 외국인이 보기에 거칠어 보이는 면이 많다. 자유의 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두가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의 부족 때문이며, 이것은 법으로 규제할 문제라기보다는 시민의식의 개선과 고양으로 해결할 문제다.

그래서 이제 대한민국이 직면한 역사적 과제는 자유의 확보와 쟁취라는 과제가 아니라, 이미 확보한 자유를 어떻게 하면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유가 없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있는 자유를 교양 있고 성숙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관리할 줄 아는 관리능력의 부족을 걱정할 때라는 것이다.

물론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에서는 아직도 주민에 대한 자유의 억압이 있고, 그 주민들은 자유의 부족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자유의 확보는 이미 보장된 상태에서 그것이 좀 더 질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는 단계에 와 있다. 소수의 몇 개 독재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국민의 자유 관리능력을 고양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바로 인류가 직면한 21세기 최대의 문명사적인 과제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의 해체로 동유럽 주민에 대한 자유의 억압은 해소되었지만, 그 자유에 대한 질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세르비아에서 나타난 것 같은 처참한 비극이 발생했다.

냉전시대의 양극체제를 탈피한 이 시점에서 전 세계의 국가들은 한층 자유로워졌지만,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세계는 더 복잡하고 위험해졌다. 독일과 러시아의 스킨헤드족의 무절제한 자유 행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의 통제되지 않는 자유가 우리 한국인 유학생들의 무고한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이 퇴출당한 이라크에서 자유의 억압은 해소되었지만,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그곳은 일상생활 속의 위험은 더 증가하게 되었다.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자유는 증가했지만, 그 자유를 질적으로 잘 관리하지 못하면, 남을 해치고 괴롭히는 자유도 증가하여 일상생활은 더 불안하고 위험해질 수가 있게 된다.

자유에 대한 억압의 해소는 축복이지만,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을 높이지 못하면, 그것은 다른 종류의 재앙을 끌어들이는 저주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자유의 질 관리는 바로 자유를 값어치 있게 누리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유에 대한 질 관리의 핵심은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지혜의 습득에 있다. 나의 자유만 주장하고, 남의 자유는 안중에 없다고 하면, 그것은 약육강식의 야만사회에 지나지 않고, 내 자유는 없고 남의 자유만 인정하면, 그것은 노예의 삶이다.

그래서 나와 남의 자유를 동시에 최대한으로 조화롭고 균형 있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의 질 관리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 능력은 도덕적 습관과 판단력에서 나온다.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남에게 폐가 되면 하지 말고 참을 수 있어야 하고, 하기 싫더라도 남에게 폐를 안 끼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한다는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습관과 판단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정약용책배소’(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유)와 같은 덕목의 내면화를 통해서 갖출 수 있는 능력이다. 정약용책배소라는 덕목의 호위가 없는 자유는 위험하고 불길하다. 정약용책배소라는 덕목의 호위를 받는 자유만이 인간의 삶을 진보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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