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담아내는 그릇, 물웅덩이
생명을 담아내는 그릇, 물웅덩이
  • 박은경 / 한국물포럼 총재, 세계물위원회 집행이사
  • 승인 2010.03.12 10:14
  • 수정 2010-03-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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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작년 5월까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32년간 살았다.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광화문 역사박물관이 위치한 서울중고등학교(옛 경희궁) 터에서 자랐다. 이렇게 서울에서 자랐고 유학 시절 외에는 계속 서울에서 살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유난히 자연 속에 뒹굴며 살아가고 있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행운을 가졌다.

어린 시절 유난히 넓은 교정을 자랑하였던 서울고등학교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있었고 운동장도 넓었다. 비가 온 후면 교정 곳곳에 등장하던 작은 웅덩이는 필자의 최고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웅덩이가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고 머물던 나에게 웅덩이는 항상 푸짐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작은 웅덩이의 물속에는 항상 움직여대는 생물체들이 있었다. 우선 모기 유충들이 그득했고, 풀들도 있고, 모기도 드나들고, 때로는 왕건이 개구리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흙탕물 속은 그야말로 수없는 생물체들이 물을 휘저으며 움직여 대는 ‘생명그릇’이었다.

북한산 자락 우리 집 마당 한구석은 비가 온 후면 마치 작은 연못처럼 물이 고이고 그 속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생명체들이 가득했다. 필자가 좀 더 부지런하여 책자를 구하여서 공부를 했었다면 이들 생명체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 글을 더 폼 나게 쓸 수 있었겠지 하는 후회를 이 순간 느낀다. 한 해는 뱀이 그 웅덩이 근처에서 나와 소스라친 적도 있었다. 하여튼 물은 이렇게 생명체의 온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웅덩이를 들여다보던 버릇을 평생 동안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기쁨은 아직도 내 마음에 따뜻함으로 번진다.

물은 생명체의 온상이다. 지구 역사 46억 년 중 무생물 상태로 15억 년은 흘러갔고, 30억 년 전에 최초로 생명체가 등장했는데 바로 물속에서였다. 고고생물학자들에 따르면 물의 용해력에 의해 물속에 녹아 있던 각종 원소들이 우연한 융합작용으로 생명이 잉태되었으리라고 한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물이 생명을 잉태시키고 생명을 키우는 온상이 되어서 이 지구상에 생명이 이어지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물이 없던 땅에 물이 고이면 생명체가 모아지는 현상을 보며 자란 필자는 물은 생명의 근원임을 터득했다. 마당 한구석의 웅덩이는 비가 온 후면 생겼다가 날이 개면 사라지곤 했다. 계절이 지나 다시 그 자리에 생긴 웅덩이에 가 보면 한 해 전에 있던 비슷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이 신기함이 물기가 말라버린 땅속에 생명체들의 유충이 묻혀 있다가 물속에 들어가게 되었다가 다시 물이 고이면 움직이게 되는 생명의 순환을 알게 된 것은 어른이 된 후였다. 웅덩이나, 습지의 물은 때로는 증발해 버리거나,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물길로 흘러가는 등 여러 과정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물의 순환 속에 살아 있는 생물체의 삶의 유형도 다양하다.

무갑류 새우는 보통 이러한 일시적인 습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조류 같은 먹이가 일시적 습지에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생명체들이 물이 마르기전 알을 심어 놓으면 습지의 물이 사라져도 다음 번 물이 차면 번성하게 된다. 어떤 생물체는 물이 마르면 아예 동면기에 들어가서 20년을 그 상태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짧디 짧은 시간과 경쟁하면서 살다 가는 생명체이거나, 혹은 땅속에 숨어 있다가 물이 다시 들면 살아나든가, 하여튼 다양한 삶의 유형으로 물과 함께 우리 곁에 있으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반평생을 살아 온 집을 떠나 이제는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왕국 웅덩이 세계가 늘 나를 감싸주고 있어서 땅을 떠난 고층의 삶이지만 견딜만하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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