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이시(R. Reich)는 ‘부유한 노예들’(The Future of Success)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그는 현대인은 경제적으로 풍요해질수록 점점 더 바빠져서 부유는 해졌지만, 삶의 형태는 노예의 모습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꿈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조직을 살리고 번성시키라는 요구에 노예처럼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라이시는 누구인가? 그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아래에서 초기에 노동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신문 토픽난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가 장관에 재임 중이던 어느 날 기자들을 모아놓고 노동부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 폭탄선언에 놀란 기자들은 왜 사표를 내느냐고 물었다. 그때 라이시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나는 내 삶을 찾고 싶다. 내 가정으로 돌아가서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장관을 그만두려는 것이다.”

이런 기사가 토픽으로 나갔을 때, 웃기는 사람이라고 흉본 사람도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라이시는 현대문명의 왜곡된 진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의 생각은 속 깊은 철학적 성찰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우리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돈에 매료되어 있고 필요 이상의 돈을 번다. 돈을 버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 돈을 버는 동안 자기 삶이 파괴되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미국에서 19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이루어진 통신 운송 정보처리 관련 신기술은 모든 부문에서 상품 개발과 판매경쟁을 격화시켰다. 그래서 현대의 모든 조직은 살아남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신상품을 개발하는 등 여러 면에서 대폭적인 개선책을 끊임없이 마련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그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미국식 신경제라고 이름 붙이면서, 이는 이미 미국을 휩쓸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신경제 체제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이런 조직의 리더인 임원들인데, 그들의 어깨에 조직과 회사의 운명이 걸려있다. 엄청난 보수는 받지만, 그 돈의 대가로 그들은 자신의 꿈과 가치는 미루어 두고, 회사 일에 올인 한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 수행을 위해 자신의 꿈과 가치를 포기한 사람들인데, 이들 출세한 CEO들이 그렇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을 라이시는 노예를 자청하는 사람들로 간주한다.

오늘날 이런 왜곡된 문명 속에서 가장 바람직(?)하게 보이는 인간상이 있는데 ‘기크(Geek)’와 ‘슈링크(Shrink)’다. ‘기크’라는 인간상은 특수 분야 마니아로서 컴퓨터 전문가, 전문 게이머(gammer), 발명가, 해킹 전문가 등이 그 대표 격인데, 외로운 작업실에서 혼자 집중적으로 일을 해 돈을 버는 사람들을 말한다. 혼자서 외롭게 노력해서 발명품 하나 내어 떼돈 벌려고 벼르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기크’ 스타일의 사람이다.

‘슈링크’ 스타일 사람의 전형은 이벤트 기획자, 마케팅 전문가, 대중 동원 전문가, 선거 전문가 등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중을 움직이게 하는 전문가들이다. 광고, 라디오, TV 쇼 프로그램 또는 드라마, 연속극을 만들어 대중을 감동시키게 하고, 그 대가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기크와 슈링크는 현대인, 특히 젊은이들의 우상이다. 경제적인 부를 획득하기에 가장 효율적이고 적응적인 인간상이다. 그러나 이 인간상은 부자가 되는 데는 유용한 인간 특성이지만,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간상은 아니다. 경제적 성공은 거두지만, 삶의 여유를 잃고 있어서, 자기 자신은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의미 있는 유대를 바르게 형성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크와 슈링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을 돈만 열심히 벌어 큰 부자가 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을 의미 있게 즐길 줄을 모른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가끔씩 음악회에 가보기는 하는데, 10분도 안 되어서 쿨쿨 잠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서 거기서 감동과 희열을 얻고 인생의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음악에 심취할 줄 알게 되었고, 음악의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신 삶의 꿈과 가치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로버트 라이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주 분명하다. 자신의 꿈과 가치를 일 속에 매몰시키지 말고 균형 있게 살라는 것이다. 즉,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자신의 꿈과 가치실현 활동을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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