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혜옹주’, 왜 우리 가슴을 두드리는가

권비영(55)의 역사소설 ‘덕혜옹주’(다산책방)가 4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한국출판인회 집계) 자리를 지키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소설은 출간 두 달 만에 제작 부수 22만 부를 돌파(다산책방 집계)했으며, 20~30대 여성이 전체 구매자의 50%가량을 차지(교보문고 집계)하고 있다.

선풍적 인기 속에 무려 4개월 이상 정상을 지키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당신 없는 나는’의 기욤 뮈소, ‘로스트 심벌’의 댄 브라운 등 세계 유명 작가들과 경쟁해 얻은 성과라는 점이 더 값지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기존 문단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덕혜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사랑하는 딸이 조선인인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점이었다.

“일본이 망했는데 조선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는 정말 정신이 이상해진 거예요.”

작가는 소설 속 가상의 대사에서 덕혜의 딸 정혜의 비정한 말투를 생생히 재현한다. 이러한 아픔으로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자 남편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고, 딸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영원히 자취를 감춘다.

그녀의 고난은 조국의 광복 이후에도 계속된다. 조선 황족을 달가워하지 않던 당시 정권에 의해 철저히 외면 받은 것이다. 신문기자였던 김을한의 노력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지 37년 만에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창덕궁에서 외롭게 살다가 1989년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작가 권비영씨도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접하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연히 대마도 여행을 다녀온 후 덕혜옹주의 한 많은 삶을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1995년 신라문학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지만 오랜 기간 무명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습작해 오던 작가는 “전혀 예상한 바 없는 일이다. 기쁘기도 하지만 어리둥절한 기분”이라며 소설의 폭발적인 인기에 놀라워했다. 

출판사도, 작가도 예상치 못한 인기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기념비적 해라는 사실을 꼽는 이들이 많다. 다산북스 김선식 대표가 “올해가 경술국치 100년이기 때문에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큰 공감을 일으키는 덕혜옹주의 삶을 재조명하자는 의미에서 출간하게 됐다”는 말도 이를 뒷받침한다. 2월 18일 국립고궁박물관이 영친왕 일가의 희귀 자료를 공개하며 덕혜옹주가 영친왕 부부에게 보냈던 친필 엽서를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못지않게 명성황후, 선덕여왕, 천추태후 등 역사 속 여성 인물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재조명돼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받았던 문화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비극성을 가진 인물인 덕혜옹주는 소설 출간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철저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1995년 윤석화 주연의 연극과 1996년 TV 드라마가 있었을 뿐, 국내에서 역사서로도, 인문서로도, 소설로도 그녀의 삶을 다룬 적은 거의 없었다. 국내 최초로 덕혜옹주를 주인공으로 한 서적을 집필한 권 작가도 이러한 콘텐츠의 빈곤함 때문에 애를 먹다가 일본인 혼마 야스코의 ‘덕혜옹주’(역사공간)를 참조했다.

1998년 일본에서 간행된 이 책은 저자의 일방적인 상상력을 배제하려고 한, 굳이 말하자면 ‘다큐멘터리 역사소설’이다. 저자는 ‘민족’과 ‘여성’의 관점에서 주인공을 분석하고, 일본이 한민족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말살하려 했는지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덕혜옹주가 여자이기 때문에 왕자들보다 유린의 강도가 훨씬 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의 역자인 이훈씨는 “다케유키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한계는 있지만, 한·일 간 근대사의 일부분을 명쾌히 정리했다는 의미 또한 가진다”고 평한다.

허구와 사실의 절묘한 경계선에서 우리를 다시 찾아온 덕혜옹주가 인생의 말미에 남겼다는 말은 독자들의 가슴을 내내 울린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