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비용 분담률 ‘4대6’ ‘5대5’ 순으로 많아
‘데이트 통장’까지 등장…‘전통적 성역할’ 이미 깨져
KBS 2TV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이하 남보원) 중 한 대목이다. 이 코너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남보원은 남성이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부 여성을 비꼬는 내용으로 재미를 주고 있는 개그 코너.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평소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서운함을 남보원이 대신 표현해줘 시원하다”는 시청소감부터 직접 아이템을 제보하는 열혈 시청자까지 남보원에 공감을 표현하는 남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 시청자들도 “자신도 모르게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박장대소했다”는 시청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반응과 오프라인 반응은 조금 차이를 보였다. 실제 주변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남성 다섯 명에게 남보원을 어떻게 봤는지 시청소감을 물었다. 의외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다. 개그는 재밌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적이 없어 공감은 어렵다는 말이었다.
회사원 이민호(33·가명)씨는 “나에게 해당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돼서 웃음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구원 전진호(33·가명)씨도 “이제껏 만났던 여자친구와는 대부분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냈기 때문에 개그는 재밌지만 크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며 “요즘엔 남자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여자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으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취업 준비 중인 김형돈(31·가명)씨는 “남보원을 보면서 등장하는 상황에 매번 공감했다”면서 “하지만 여자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능력이 닿는 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 크게 상관치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데이트 비용의 불평등에 대해 공감 못한다는 의견과 공감한다는 의견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는 상황. 이에 실제 20~30대 커플 8쌍에게 직접 그들의 평균 데이트 비용과 데이트 비용 분담률을 물었다.
대학에서 홍보광고학을 전공하는 김진아(25)씨와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오현식(27)씨 커플은 1회 데이트에 평균 5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며 대부분 반반씩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캠퍼스 커플인 이수정(23)씨와 이종수(24)씨 커플도 평균 3만~4만원 정도의 비용을 쓰며 데이트마다 번갈아 가며 한 명이 그날의 모든 비용을 내는 형식으로 5 대 5 비율을 지키고 있다고.
대학생 황선향(23)씨와 그의 남자친구 김목양(24)씨의 경우는 조금 남다르다. 함께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 매달 20만~25만원씩 입금해 모든 데이트 비용을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것. 선향씨는 “누가 더 내고 덜 내는 불평등도 사라지고 데이트 비용도 규모 있게 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여전히 3 대 7이나 2 대 8 비율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돈을 분담하는 경우도 2쌍 있었다. 나머지 네 커플은 4 대 6 비율로 남자가 조금 더 부담하고 있다고 밝혀 8쌍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8쌍의 평균 데이트 비용은 6만2800원이었다.
여성의 높아진 경제·사회적 지위는 남녀의 역할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능력 있고 능동적이며 제공만 하는 남자, 수동적이고 기다리고 의존하며 제공받는 것은 여자라는 성별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박힌 전통적인 낭만적 사랑의 공식이 깨진 것이다.
이번 취재에 응한 16명이 결코 2010년을 살아가는 20~30대를 대표할 순 없지만 그들의 답변 속에는 분명 현재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세상의 변화도 녹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