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륙이나 종이 그리고 가죽을 서로 탄탄히 이어 접합시킬 때 아교풀을 사용하고, 벽돌과 벽돌을 잇고 쌓아서 큰 성채를 짓고 높은 탑을 올릴 때 교니 혹은 모르타르(mortar)라는 접착제를 사용한다. 만약 이런 접착제가 없다고 하면, 아무리 좋은 피륙이나 종이가죽도 좋은 작품이나 상품으로 전환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접착제는 이들의 용도를 배가시켜 준다. 마찬가지로 벽돌이 낱개로서는 아무리 강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다른 벽돌과 접착이 잘 안 되면 그 용도는 극히 제한된다. 건물 짓는 데는 소용이 없고(지어도 위험하고), 책꽂이 대용으로나 사용되는 게 고작일 것이다. 모르타르로 잘 물리지 않는 벽돌은 아무리 강도가 높더라도 건축에는 사용되지 못한다.

그래서 아교풀과 교니, 모르타르는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계속 진화해왔다. 쌀가루나 밀가루로 쑤어 만든 풀에서부터 쇠가죽이나 힘줄을 오래도록 고아서 만든 아교풀과 교니 그리고 최첨단 화학지식을 이용한 본드에 이르기까지 접착제는 꾸준히 발달해 왔다.

건축에서도 강한 벽돌과 시멘트를 개발하는 일 못지않게 접착력이 높은 모르타르를 찾는 일에도 엄청나게 노력해왔다. 횟가루에 해조류를 섞어 끓인 양회가 한동안 최고의 교니였지만, 지금은 시멘트로 만든 모르타르가 건축물들을 산 높이만큼 높이 끌어올리고 있다. 요즘 철강으로 기둥을 세워 짓는 건축물이 많아지고 있는데, 여기에도 접착의 기능은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철강재를 서로 탄탄하게 연결해 주는 접착제를 교니라 부르는 대신 리벳(rivet)이라고 부른다. 에펠탑은 수만 개의 철강재가 수백만 개의 리벳이라는 못으로 연결되어 지탱되고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인간사회에서도 아교풀과 교니 그리고 모르타르는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화목한 가정은 구성원들을 탄탄하게 연결해 주는 아교풀이 강해서 그런 것이고, 똘똘 뭉쳐서 한마음이 되어 굴러가고 있는 조직이나 회사는 구성원들을 묶어주고 연결시켜 주는 교니와 모르타르가 강하고 양질(良質)이라서 그런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던가? 가족은 가족이되 서로 으르렁대며 불평하고 미워하는 집안도 있다. 회사와 조직도 마찬가지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고, 흠잡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갈등하는 조직도 많다. 그런 집안과 조직은 아교풀과 모르타르가 약하거나 불량(不良)해서 그렇다. 가족과 가족,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접착제의 성분이 불량품인 것이다.

접착제의 성분을 알면 이것을 강화시켜서 접착력을 높일 수가 있다. 물건을 접착시키는 아교풀의 성분은 녹말가루거나 쇠심줄이고, 벽돌을 이어주는 모르타르의 성분은 석회석 가루이고, 본드의 성분은 톨루엔과 핵산이며, 리벳의 성분은 슬래그(slag)가 적은 철(鐵)이다. 이 성분의 질과 양을 높여주면 접착력이 강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접착시켜 주는 아교풀의 성분은 무엇일까? 도덕이다. 혹은 윤리라 일컫는 행위규칙이다. 인간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결속시켜 주는 아교풀은 도덕인 것이다.

한자로 도덕과 동의어로 쓰이는 윤리라는 글자를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윤(倫)이라는 글자를 보면 사람인(人)이  옆(  )과  위(人)에 두 개 있고, 이 사람들을 하나로 잇고(一), 나란히 접착 시킨 모습(冊)이다. 즉 윤리와 도덕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접착시키는 아교풀이라는 것이 한자의 형상에도 그대로 배어 있는 셈이다.

요즘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돼지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도 참뜻은 가족 사이에서도 도덕을 지켜야 균열이 생기지 않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증자와 그 아내가 어린 아들을 집에 두고 시장에 가려고 나섰다. 아이가 따라나서며  울자 아내가 떼어 놓으려는 방편으로 돼지를 잡아 고깃국을 끓여 주리라는 약속을 한다.

시장을 다녀오자, 증자는 곧 돼지를 잡을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기겁을 한다. 아이를 달래려 빈말로 한 약속인데, 진짜로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증자는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돼지를 잡고 아이에게 고깃국을 끓여 먹인다. 약속을 했으면 지키는 것이 도덕이고, 이 도덕이 가족 사이에서 잘 지켜지면 가족이 화목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쟁한다. 증자의 가족은 도덕이라는 아교풀로 잘 접착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기대하며 인내와 희생 속에 사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 출세와 성공이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으며 이루어져야지, 사람들의 질시와 원망을 받으며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즉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한(恨)을 품게 하며 이룬 성공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의 출세와 성공을 바라는 부모일수록 도덕이라는 아교풀을 자녀에게 잘 입혀 놓아야 한다. 어느 누구와도 긍정적인 인간관계로 잘 접촉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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