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이야기로 희망 전하고파”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이번 겨울, 날까지 추워 길에 생긴 빙판이 몇날 며칠씩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엎어지는 위험천만한 빙판길에서도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따뜻한 뮤지컬 ‘연탄길’의 두 주연 여배우를 만났다.
1월 22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연탄길의 공연장인 명보아트홀 무대 위 풍경이 무언가 어색하다. 머릿수건을 하고 빗자루를 손에 쥔 지긋한 나이의 청소부 아주머니 분장을 한 배우가 소품 나무의자를 번쩍번쩍 들어 나른다. 척 보기에도 딸쯤 되어 보이는 소녀의 모습을 한 다른 배우는 “그래그래 서있어야지~밝게 웃으면서 좀 찍어~” 하며 사진촬영 중인 아주머니에게 반말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네 개의 스토리로 엮은 옴니버스 형식의 뮤지컬 연탄길에서 라미란(34·사진 왼쪽)씨는 실제로는 선배인 임선애(40)씨의 엄마로 등장한다. 연탄길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반딧불이’에서 라미란은 남편을 잃고 30여 년을 한결같이 Y대학의 청소부로 일한 경화엄마 역을, 임선애는 Y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교수의 자리까지 오른 딸 경화역을 맡았다.
“얼굴에 벌써 8자 주름이 있죠?(웃음) 대학 1학년 때 처음 노인역을 맡은 뒤로 줄곧 제 나이를 훨씬 웃도는 역할만 맡았어요.” 스스로를 ‘노역 전문 배우’라 칭하는 라미란씨에게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연령대인 노인역할을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저 노인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의 사람을 이해하고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더 많이 해온 임선애씨는 후배들에게 “이제 어린아이 역할을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특유의 신선한 얼굴과 귀여운 목소리로 지난 1996년 ‘브로드웨이42번가’ 초연 때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여주인공 페기역을 맡으며 얼굴을 알린 그녀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어린 역할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여배우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만나자마자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서로가 친근했다. “임선애 선배는 까칠하고 어렵기로 유명했어요. 그런데 새침데기 같던 선배의 첫마디가 ‘배고프지 않니?’인 거예요” 두 여배우는 만나자마자 쌈밥집으로 직행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서너 시간 수다를 떨고 나자 둘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유쾌해 보이는 두 여인도 뮤지컬 연탄길 작품을 하면서는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임선애씨는 처음 런스루(run through-공연을 올리기 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처럼 진행하는 리허설)를 하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서로의 얼굴만 보면 눈물을 흘리는 두 배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수정하기에 이르렀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됐어요. 이 작품을 하며 어머니 생전에 ‘엄마’ 호칭을 썼던 것보다 더 많이 ‘엄마’라는 단어를 써본 것 같아요” 임선애씨의 개인적 삶의 경험은 작품에 투영되어 극중 인물의 생동감을 한층 높였다. 뮤지컬 ‘연탄길’의 등장인물은 늘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이며,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라미란씨는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공연을 보고 난 후 주변에 따뜻한 사람이 많다는 희망을 드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공연문의 02-584-2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