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나면 여자들은 왜 대피하지 않을까
지진이 나면 여자들은 왜 대피하지 않을까
  • 김진영 / 한국국제협력단 정책연구실 대리
  • 승인 2010.01.22 10:20
  • 수정 2010-01-2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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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중남미 최빈국인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강도 7.0의 지진이 발생해 온 도시가 초토화되었다. 사망자가 20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공식 집계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매우 절망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해외긴급구호대를 급파하여 구호물자 전달 및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민·관 합동으로 1000만 달러의 긴급구호 지원도 약속했다.

아이티로부터 연일 불운한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지진이 일어나고 2시간 후에 현지에서 여아가 태어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기는 무사하지만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 산모는 출혈이 심해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다.

문득, 캐나다의 한 개발원조 젠더전문가가 자신과 친분이 있던 어떤 장교에 대해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장교는 전쟁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똑같이 극심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994년 인종 학살이 자행되었던 르완다에 파견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군용차량을 타고 가며 좁은 흙길 양쪽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걸어가는 피란민 행렬을 보게 되었다. 그때, 더딘 속도로 힘겹게 걸어가던 한 여인이 길 아래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다. 장교는 놀라서 차를 멈추고 상황을 살펴보았고, 여인이 땡볕에 걷다가 양수가 터져 더러운 도랑 밑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출혈이 심해 즉각적인 의료진의 도움이 없다면 산모가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 장교는 전쟁 시 왜 여성이 더 큰 위험에 처해있고 피해를 입는지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재난상황이 닥쳤을 때 부유 층보다 빈곤층이,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이 위험에 더 노출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대가 불안정하고 재난에 무방비한 건축물에서 살고, 재난경보나 대피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기 때문이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이 높은데, 그 비율이 점점 증가하면서 소위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재난의 더 많은 피해를 여성이 입는 것이다. 여성은 경제적 피해 외에도 육체적·정신적 피해에도 매우 취약하다. 재난·분쟁으로 병원과 같은 사회시설과 치안시스템이 붕괴되면 임신·출산·양육 등 모성성을 보호받기 어려우며, 난민촌 내 강간이나 극한 상황의 스트레스로 인한 가정폭력과 범죄에 많은 여성이 희생당한다. 한편, 지난 남아시아 쓰나미 때는 많은 여성들이 자녀들과 세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피하지 않고 있다가 화를 입었다.

긴급개발원조에서 젠더 관점을 통합하는 것은 원조사업의 효과성 제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젠더 관점의 통합이란 남성과 여성이 각각 다르게 처한 상황과 문제를 분석하고, 성별에 따른 실제적·전략적 필요를 기반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기본인간욕구(BHN)를 충족시키기 위한 실제적 필요와 불균형적인 남녀관계에서 비롯되는 성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적 필요를 명확하게 규정하여 사업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함으로써 사업성과를 도모할 수 있다. 

KOICA는 금년부터 성 인지 예산제도와 ‘성 인지 담당관’ 직제를 도입하여 성 인지적 원조 정책 수립 및 제도 구축에 힘쓰고 있다. 성 인지 예산은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여 사업의 혜택이 남녀에게 동등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을 배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성인지 담당관’의 역할은 원조사업 정책 수립 및 집행 시 성 인지적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금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의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가 보다 효과적인 긴급원조 지원과 성평등 달성을 통한 국제 빈곤 퇴치에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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