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포토샵은 우리 집에서 제일이에요"
“물 흐르듯 살아가는 날들을 낙서하듯 써 내려가는 이야기입니다. 거니시는 길목에서 눈에 들어오는 들꽃이라도 만나시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예 작품과 가족의 일상이 꼼꼼히 정리되어 있는 이 홈페이지 운영자는 일흔다섯의 지윤명(사진) 서예가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는 포토샵 색 고르기로 온종일 컴퓨터 앞을 지키는 열정적인 ‘유저(user)’다.
원곡 김기승 선생의 제자로 ‘원곡서예상’ 최초 여성 수상자인 지윤명 서예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광복을 맞아 한글을 배우면서 처음 서예를 접하게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서예에 입문한 것은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서른여섯 무렵이었다.
“서예는 죽을 때까지 할 일을 선택한 것이었어요. 즐거워서 하는 거지 누가 시키면 못하죠. 중간에 1년씩 쉬기도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1999년 지윤명 선생은 예순넷의 나이에 컴퓨터를 만나 최근 10년 동안엔 붓 대신 마우스로 새로운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큰며느리와 손자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서 카드를 만들어서 주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아이들에게 하나씩 물어보려니까 답답했어요. 때마침 여고 동문회에서 컴퓨터를 가르쳐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정말 열심히 했지요. 5년간 배운 걸 다 노트해 놨어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는 며느리가 생일선물로 골격을 만들어주고 본인이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홈페이지 덕에 며느리와 서로 의지하며 공통의 관심사를 나눌 수 있고, 제일 가까운 친구도 홈피를 운영하는 동창들이다.
“가족에게 ‘내가 뭘 올려놨으니 좀 봐라’ 하면 들어와서 보죠. 친구들도 왔다 가고요. 친구들이 나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뭐하나’ 고민한다고 하는데, 난 그런 걱정은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자식들도 ‘어머니 혼자 잘 노시겠지’라며 걱정을 안 해요.”
고운 세월을 보내왔을 것 같은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의 지윤명 선생은 젊은 시절부터 앓아온 지병 때문에 남을 돕지도 못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인터뷰 내내 겸손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