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어떤 엄마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엄마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 대부분은 편견을 가지고 나를 보게 된다. 아마도 자녀 교육에 열심인 엄마일 거라고.

우선 큰아이는 성적 면에서 뒤처진다. 작은아이는 그와는 반대다. 때문에 큰아이 엄마로 불리며 만나는 모임에서 나는 기가 죽는다. 내가 시험을 못 본 것도 아닌데. 또 작은아이 모임에서는 어떻게 공부를 시키는지 궁금해들 한다. 여기서는 나의 교육법에 관심을 기울이며 긍정적 관심을 가진다.

나는 결혼하면서부터 가지게 된 아파트에 아직도 살고 있는데 지역적 특성 때문에 10억대가 되어버린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이 아파트가 나에게 돈을 가져다 주진 않았는데, 모두 나를 ‘부자’라고 부른다. 집이 있다는 이유로 청약통장 갖는 것조차 조심했으며, 재테크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나의 남편은 명문대를 나와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겐 분에 넘치고 감사한 것들이지만, 진정한 나의 모습은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나의 신념들과는 관계없이 내가 소유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를 설명해 주는 상황에 살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 다니며 친구들이 최루탄 가스에 질식하며 민주화를 부르짖을 때, 난 강의실 너머로 그들을 훔쳐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친구들은 이미 자녀들을 그 타도의 대상이던 나라에 조기유학을 보냈건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나는 이곳 대치동에서도 학원에 의지하는 편이 아니다. 성적이 부진한 큰아이를 맡아줄 학원이 없으며, 혼자 공부하겠다는 작은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해서다. 누군가 나에게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철학이 없었다. 내가 대치동에 산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자녀의 공부법과 학원을 물어와 상담을 해 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이 시대에 그저 유행에 따라 바꿔 입는 옷처럼 남들이 보기에 좋은 모습으로 남에게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2010년 새해를 맞이하며 반성해 본다.

누구의 엄마로서의 옷을 입을 것이 아니라 ‘나의 옷’을 입어야겠다.

몇 년 전부터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플루트를 배우게 되었다. 악보를 보며 박자를 세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상담에 관한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녀들도 있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자식이 이루어 놓은 허상과 내가 가진 것 뒤에서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자녀들을 사랑해온 것처럼 세상에 돌려놓을 사랑의 끈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어려서는 나의 부모님의 신념과,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엄마라는 틀 안에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았던 내가 이젠 계획한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의 엄마는 이런 분이라는 기억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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