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원칙’에 대한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경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새 날이 되는 것이지만, 새해의 새 날은 우리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날이지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하나의 매듭을 짓고, 지난 아픔도 일단 접고, 절망도 이겨내고, 포기하려 했던 마음도 다시 추스르고, 내 안의 나와 마주하며, 희망과 용기와 새로운 비전을 향해 계획을 세우는 그런 시간입니다.

작년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는 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굽이쳐도 결국에는 바다에 이른다고 하고, 누구는 강물처럼 역사를 밀고 가는 우리가 없이는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새해를 맞이하는 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작품이 일단 세상에 나오면 작가나 제작자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적 객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해석하고 싶은 방식으로 행간을 읽곤 하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여서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미실과 덕만의 논쟁이 가장 가슴에 남았습니다. 

희망과 지혜를 가진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구상하는 덕만에게 미실은 “백성들은 진실을 부담스러워 하고, 희망은 버거워 하고, 소통은 귀찮아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인다”고 말합니다. 또한 “처벌은 가혹하고 단호하게, 보상은 조금씩 천천히”라고 합니다. 일견 마키아벨리적인 미실의 리더십이, 그리고 결핍을 채워나가려는 미실의 통치방식이 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민주적이고 배려적인 덕만의 통치철학과 대등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일까요? 미실을 연기한 배우의 연기와 미모가 너무나 탁월해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청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이분법적 질문들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합니다. 과연 덕만의 현실인식과 포부는 너무나 이상적인 것일까요? 만일, 우리 모두 진실이나 자유, 희망, 소통과 같은 문제보다 나의 이익, 내 가족의 성공, 나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면, 상황을 직시하고 원인을 파악하기보다는 누군가 대신 알아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런 고민을 하는 것조차 신자유주의 경쟁시대에서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된다면, 우리 사회는 미실의 독설처럼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마지막 이야기는 믿음을 저버리고, 조바심 내며, 일관성을 잃어버린 비담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다른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과 원칙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일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치졸한 계략으로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간 염종은 비담에게 “또 남 탓이야? 문제는 니가 믿지 못한 때문이지. 나는 약간 도와주었을 뿐이야. 선택은 네가 한 거야”라고 이야기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 그것이 전부입니다. 역사가 묻는 것은 곧 내가 나에게 묻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답은 빈손입니다. 승리냐 패배냐가 아니라 존중입니다.(‘겨울’『길 밖의 길』 중, 조정환)

새해 아침,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회를 믿으며, 힘찬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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