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또 저문다. 캐럴과 화려한 불빛들이 온 거리에 넘쳐나고, 각종 송년회의 흥청망청한 모임들로 인한 술 냄새가 차가운 밤공기를 비릿하게 물들인다. 올해는 유난히도 시간 개념이 무너진 한 해였던 것 같다. 1월 20일 용산사태로 시작되어 두 분의 전직 대통령께서 승하하시고 미디어법 개정, 4대강, 세종시, 쌍용자동차, 다양한 방식의 노동자 짓밟기 등 갖가지 ‘사태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전개되었던 탓일 것이다. 뜨거운 여름 볕 아래 눈물로 노제를 치른 것이 벌써 아득한 옛날의 전설 같기만 하다.

그러한 틈바구니에서 ‘여성’과 ‘인권’의 문제는 다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어 소위 진보 언론에서조차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주변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반인권적, 반여성적인 사태에 대응하는 여성단체들의 항의 성명과 집회는 여론의 조명에서 배제되어 비가시화된 지 오래되었다. 너무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며 착잡한 심정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또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많은 섬들에 갇혀 있는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진실들’의 퀼트를 짜보고 싶은 여성주의자들의 소망은 가능하기나 한 걸까?

필자는 탐욕스러운 ‘돼지들’에게 우리의 소중한 ‘진주’를 내준 책임을 통감하며 최영미 시인의 ‘돼지들에게’라는 시를 다시 읽고자 한다. 구걸하거나 눈치 보거나, 뻔뻔한 돼지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 그들-돼지를 키운 것도, 그리고 키웠다는 사실을 잊은 것도 바로 우리 스스로다. 그들의 끊임없는 탐욕에 질려 도망치거나 눈 닫고, 귀 막은 자도 우리들이다. 늙고 병들고 지친 우리들에게 계속 진주를 달라고 요구하는 그 ‘돼지들’의 추악한 얼굴을 환히 드러내 발붙일 곳 없게 만들 2010년의 새로운 해가 뜨길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2009년 시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상략)

언제 어디였는지 나는 잊었다.

언젠가 몹시 흐리고 피곤한 오후,

비를 피하려 들어간 오두막에서

우연히 만난 돼지에게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도 몰래 진주를 주었다.

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두웠기에

나는 그가 돼지인지도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주머니가 털렸다는 것만 희미하게 알아챘을 뿐.

그날 이후 열 마리의 배고픈 돼지들이 달려들어

내게 진주를 달라고 외쳤다...

(중략)

나의 소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는 피 흘리며 싸웠다.

때로 싸우고 때로 타협했다.

두 개를 달라면 하나만 주고,

속이 빈 가짜 진주목걸이로 그를 속였다.

그래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멀리,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다.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기차를 타고 배에 올랐다.

그들이 보낸 편지를 찢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그 탐욕스런 돼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늙고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제발 한번만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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