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부’라는 주홍글씨에 가려진 옹녀

‘옹녀 이야기’는 변강쇠의 죽음과 동시에 옹녀라는 인물이 사라진 데에 의문점을 가지고 시작된다. 남편 변강쇠가 장승을 땔감으로 쓴 저주를 받고 급사하자 지리산 골짜기에 혼자 남겨진 옹녀는 남편의 장사를 지내주는 사람과 함께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그 소문을 듣고 지리산 골짜기를 찾아간 남자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지만 천하일색 옹녀와의 하룻밤을 꿈꾸는 각설이, 박수(남자 무당), 파계승, 소경, 뎁득이(마부) 등 5명의 남성이 지리산 기슭에 모여든다. 각자가 간직한 기억 속의 옹녀 이야기를 풀어내며 하룻밤을 보낸 이들은 함께 옹녀를 찾아 나선다.

전반부가 떠돌이꾼 5명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면 후반부에서는 옹녀의 진짜 인생이 펼쳐진다. 강제징용에 끌려나가 전쟁터에서 죽어버린 첫 남편에서부터 변강쇠에 이르기까지 그의 옆에 있던 남자들이 모두 죽어버린 것은 세상이 이야기하듯 ‘그녀가 남편 잡는 요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서 벌어진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이들. 각자의 성적 욕망을 위해 옹녀를 찾아 나섰던 5명은 옹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굿판을 벌인다.

‘옹녀 이야기’는 옹녀 또한 시대의 하층민이자 여성으로서 순탄치 않은 시대의 희생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으로 어지러운 시대 속에서 남성과 권력에 억압당한 하층민의 삶을 상징하는 옹녀의 인생은 한 인간이 사회에서 축출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게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우리 문화 콘텐츠 만들기’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한 전통 예술의 차용이다. 대형극장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에 비하면 얼핏 초라해 보이는 무대지만 국악과 무속음악을 차용한 전통 장단의 타악 라이브가 흥을 돋우고 불교와 무속신앙을 포괄하는 한바탕 굿판이 펼쳐진다. 거대한 힘을 상징하는 변강쇠는 큰 얼굴과 손을 가진 인형으로, 어린 시절의 옹녀는 가녀린 옹녀 인형으로 펼쳐지는 등 다양한 한국적인 오브제의 사용 또한 눈에 띄는 볼거리다.

사회적 낙인 속에 가려진 옹녀의 인생을 재조명하겠다는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옹녀를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그리기보다 그저 남성들의 희생물이자 한 많은 여성의 상징으로 표현하는 데 머물렀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극 ‘옹녀 이야기’는 한국 전통극의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12월 27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3관. 문의 02-575-6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