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국제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공식 출범했다는 이야기다.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안에 개발원조위원회(DAC)라는 곳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여기에 24번째 국가로 가입했다는 것이다. DAC는 세계 국제원조 총액의 90%를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선진국 클럽’이란 명칭으로도 불린다.

이 DAC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세계의 가난한 국가를 돕는 일에 나선 부자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등장한다는 의미다. 비서구권 국가로서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함께 유일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되는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와 인터넷 방송에서 이런 소식을 전하며 “광복 직후 초콜릿과 사탕을 얻으려고 미군을 따라다니던 일, 원조 밀가루와 우유로 허기를 채운” 기억을 감상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60대 이후의 시민들 치고 그런 기억을 쉽사리 잊어버릴 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시인 바이런이 그랬다고 했던가? “아침에 깨고 보니 어느새 유명해졌다”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지금 그런 게 아닐까? 1950년대의 처참한 전쟁과 폐허,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 고질병이던 부정부패 그리고 뼈저린 절망감.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에겐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변신은 그야말로 ‘깨어나 보니 달라졌다’는 느낌, 바로 그것일 것이다.

우리의 국력(國力)과 국격(國格)이 60여 년 전과 현격히 달라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 어디든 가 보라.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고, 그들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의미 있는 일들이 아닌 게 없다.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세계 17개국 분쟁 현장에 국군의 젊은 병사 700여 명이 세계 평화 유지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고비사막에서 황사를 막을 나무를 심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식수를 제공할 우물을 파주고 있는 젊은이도 있다.

21세기가 정보통신기술(ICT) 중심 시대라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이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로 힘들어 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 분야의 무역수지 흑자가 세계 1위(OECD 1위)다. 가장 많은 수출을 해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단 이야기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의 유수한 선진국을 제쳤다는 뜻이다. 소수민족이라면, 소수민족이고, 약소국가라면 약소국가인 대한민국이 지금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디 ICT 분야만 그런가? 그것을 뒷받침할 탄탄한 인프라 산업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철강, 자동차, 조선, 건설, 원자력 발전 등의 기간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세계 1등 상품(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수는 약소국답지 않게 많고, 다양하다. 

한국은 지금 활력이 활화산 같다. 88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그 생래적(生來的) 활력을 보았고, 한강의 기적과 ICT 강국의 실현에서 경제에 대한 열망(熱望)을 보았고, 문민, 국민 그리고 참여정부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 기대(期待)를 보았다. 가끔씩 에너지 과잉으로 실망스럽고 한심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지만, 그 역시 활력이 넘치기 때문에 생겨나는 부작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는 어떤 계기가 있게 마련이며, 그 역량의 배양에는 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즉, 역사에 부침했던 여러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보면, 흥하고 망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이 일구어져간 힘의 배양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이런 발전의 계기가 일어나고 활성화되는 시기의 사회를 ‘절정기 사회’(絶頂期 社會:The Peak Society)라고 부르면서, 이 시기에 어떻게 비범한 인물이 키워지며, 문화가 융성하는 지를 연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세계  역사상의 전형적인 절정기 사회는 BC 5세기께의 아테네, 예수가 살았던 당시의 로마제국, 8세기의 중국 당(唐) 왕조, 중세 후반의 이슬람 사회,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20세기 초의 유럽 중부도시, 20세기 중반의 뉴욕이다.

그가 말하는 절정기 사회의 특징의 하나는 개인과 조직 그리고 지역사회들이 더 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분위기가 고조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15세기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이 절정기 사회였을 때, 그 지역의 명문가인 메디치(Medici family) 가문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과 양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는 한국 사회의 변화는 절정기 사회의 조짐일까?

H 가드너가 이야기 하듯, 희생과 헌신 그리고 양보의 정신을 담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핵심인데, 여의도 쪽을 바라다보면, 아직 아닌 것 같고, 그래도 이 불화협(不和協)한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어 가는 것을 보면, 그 조짐이 가동중(稼動中)인 듯도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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