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패망 후 여성들이 재건 세력으로 등장하며 정치세력화 시작

독일의 전통적인 여성관과 가부장적인 정치문화와 법률은 정치로부터 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해왔다. 1850년에는 프로이센 단체법에 의해 여성은 정치적 단체에 가입할 수 없었으며, 여성이 집회나 회의에 참석할 경우, 해당 집회나 회의는 관할 경찰에 의해 해산할 수 있었다. 제도와 관습, 법률에 의해 철저히 여성에 대한 정치 배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치 시대에는 성과 출산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졌으며 불임법에 의해 20만 명의 여성이 강제 불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거치며 패망한 독일의 미래를 짊어진 것은 바로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전후 독일 재건의 주체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동등한 권리를 누릴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독일의 전통적인 여성관과 보수적인 정치풍토는 1960년대까지도 여성의 정치참여를 어렵게 했다. 이후 여성들이 정치주체로 서기 위한 지난한 노력과 투쟁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독일 여성들은 적극적인 ‘개입전략’으로 정당 활동에 참여했고, 여성정책의 전문화와 입법화를 위해 노력했다. 독일 여성들은 고통스러웠던 정치참여 배제와 차단의 역사를 딛고 일어서, 할당제를 통해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고자 했으며,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출현은 독일 여성정치에 있어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회민주당에서는 할당제에 대해 남성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와 반론이 있었으며, 남성 당원들은 전통적인 성역할 분담론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성 당원 수의 증가에 비해 저조한 여성의 당내 대표성은 여성할당제에 대한 도입 논의의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사회민주당의 핵심적 여성 기구인 ‘사회민주주의 여성연구회’의 노력으로 뮌스터 전당대회에서 당 조직과 의원 양성에 여성이 최소 40% 이상 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할당제를 당규로 결정하게 되었다. 뮌스터 전당대회에서 마련된 여성할당제는 2013년에 만기되어 폐기, 지속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녹색당은 당내 여성의 정치대표성을 증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일의 정치·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녹색당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의회에 진출하고 정당의 주요 의사 결정직을 차지할 수 있도록 50%의 여성할당제를 당헌과 당규에 명시했다. 또한 여성 정치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특별조치인 여성당규에 의해 여성과 관련된 안건에서 여성들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특별투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여성문제에 대한 전권을 담당하는 여성평의회에 당내의 공식적인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여성정치 확대를 위한 내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기독교 민주연합에서는 쿠오룸 제도를 도입하였고, 좌익당에서도 여성의 당내 대표성과 여성 의원의 비율이 50% 여성할당제의 영향으로 증가했다.

독일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인 이름가르트 슈베처도 “독일의 여성정치 발전은 적극적인 여성정치할당제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 “권력배분에서 (남녀) 평등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의 배분에 있어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집권으로 인해 여성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있다고는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대표성의 지속적인 확장과 발전이 될 것이다. 독일 여성할당제는 여성 대표성이 실질적인 권력배분이 되고, 여성 대표성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당에서의 여성 대표성과 정책결정력이 남성과 대등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준다. 즉, 당내 정당 민주화를 통한 여성들의 정당 내 대표성이 여성 의원의 의회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에서의 여성할당제 특징 중 하나는 여성 의원에 대한 할당제만이 아니라, 정당에서의 여성 대표성 증대와 여성 의원의 증대를 함께 할당제를 통해 실현한다는 것이다. 정당에서의 증가된 고위직 여성 비율에 의해 더 많은 여성 의원을 배출해 낼 수 있는 내부적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여성들이 정당에서의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여성정치 발전의 미래를 밝게 하고 여성들의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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