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과 예슬, 법과 제도 없어 희생됐나
혜진과 예슬, 법과 제도 없어 희생됐나
  • 진선미 / 법무법인 이안 변호사
  • 승인 2009.11.27 10:22
  • 수정 2009-11-27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론에 휘둘린 생색내기 제도 도입으론 역부족
양형현실 분석, 기존 예방·재범방지 대책 강화를
아동성폭력 문제로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 저마다 근절을 외치며 형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이니, 화학적 거세 도입이니, 유전자 보관제니 낯선 용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때 드는 한 생각은 참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 모르나 매년 가슴을 치는 통한의 아동성폭력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차마 이름을 꺼내기도 미안한 혜진이와 예슬이 사건도 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똑같은 대응구조의 연속이다. 국회의원들은 발 빠르게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은 엄정처벌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입법안을 발표하고, 정부는 법무부, 여성가족부, 청소년위원회 등 관련 부처들이 저마다 마련했다는 대책을 내놓는가 하면, 각종 언론은 질타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신중하면서 효율적인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폭력 범죄의 복잡다단한 현실의 명확한 조사 및 분석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입법이나 정책이 마련돼야만 그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으나 어디에도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성폭력 범죄가 근절되려면 법정형의 가중보다 현실적 양형의 합리성,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양형위원회에서 성범죄 양형기준을 정할 당시에도 법원의 남성 중심적 태도와 관대한 형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양형 현실 분석자료도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양형 수준의 적정성 판단은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음주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거나 초범이라는 양형인자를 특별히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격렬했지만 객관적 근거로 삼을 만한 연구 자료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만족해야만 했다.

성폭력 범죄의 발생 및 재범 실태와 형벌 등 각종 정책들의 효과 검증 등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성폭력 범죄자 처우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국가정책 기본계획 하에 체계적·종합적·일관적·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2007년 4월부터 경찰, 검찰, 형사법원, 교정청과 관련, 지역사회 민간단체들이 공동으로 구성한 ‘성폭력 및 학대 방지를 위한 범정부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에 있다. 이는 성폭력 예방, 형사 사법적 대응, 피해자 보호 지원 분야의 종합 전략 대책이라고 한다.

재범 방지를 위한 다양한 치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상습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제도 도입,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하여는 가석방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한다거나 위치추적 전자장치, 신상공개 제도 등을 통한 사회 내 관리통제 강화 등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여러 대책들이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구체적 사건이 발생하여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무마용으로 처벌 강화와 치료처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만 되풀이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입법이나 제도를 마련하기보다는 기존의 제도 안에서 놓치거나 소홀히 다룬 예방, 재범 방지 대책 등이 없는지 세밀한 점검과 보완작업을 행할 필요가 있다.

양형위원회에서도 적정한 양형 수준을 가늠하기 위하여 좀 더 기초적인 자료 확보를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시간과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곤 했다. 그렇다. 모든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정부에서는 성범죄 근절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지만, 더군다나 부처별 관련 사업의 예산이 오히려 삭감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더라도 그 진정성과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색이 나지 않더라도 기초부터 튼실하게 만들어가는 정책 입안자의 태도를 학수고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