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회 즐거운 공동체 꿈꾼다"
이주 외국인 다룬 뮤지컬 ‘빨래’로 주목…‘팩토리’‘빵’ 준비 중
-수상소감과 함께 뮤지컬 ‘빨래’를 쓰고 만들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신다면.
“함께 상을 받는 분들을 보며 다문화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여성 문화인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 즐겁다.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스물다섯에 서울로 올라와 연출 공부를 하던 당시, 반지하방에서 살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갔는데, 똑같이 빨래를 널러 온 옆집의 동남아 출신 남성이 말을 건냈다. 난 속옷을 널고 있어 아무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남성이 “너한테 말 거는 거 싫은 거냐”고 물었고 나는 얼마나 대단한 것처럼 말 한마디 안 건냈나 하는 생각에 미안했다. 그 일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뮤지컬 ‘빨래’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올해로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알게 된 지 꼭 10년인데, 큰 상을 받게 돼 격려가 된다.“
-뮤지컬 ‘빨래’는 대형 뮤지컬이 시장을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도 2005년부터 장기간 공연되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며, 어떤 뮤지컬인가.
“지방 출신의 여성 주인공이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다 빨래를 널면서 몽골 출신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주변에 장애인 딸을 둔 할머니,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는 엄마 등 여러 소외계층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렇게 서울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공감대를 느끼는 것 같다. 얼마 전 지방출신, 비정규직 여성 관객들을 모시고 공연을 했는데, 85분이나 와 주셨다.”
-뮤지컬 ‘빨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는.
“사랑의 고백 장면에 등장하는 세레나데 ‘참 예뻐요’와 등장인물들이 빨래를 하며 부르는 ‘빨래’ 가 하이라이트다. ‘참 예뻐요’는 지인이 버스정류장에서 아침 출근길에 매일 만나는 이주 노동자 남성으로부터 고백을 받은 적이 있어 모티브가 됐다. ‘빨래’는 ‘둘둘 말린 스타킹 아홉 켤레, 구겨진 바지 주름 간 치마, 담배냄새 밴 티셔츠, 떡볶이 국물 튄 하얀 블라우스, 발 꼬랑내 나는 운동화 밑창, 머리냄새 묻은 베개 홑청’ 등을 빨래하며 기운을 내는 사람들의 노래다.”
-‘빨래’ 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잘 외신다.
“작품을 쓰기 전 빨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여자들은 첫 생리 후 빨래가, 남자들은 군대 가서 처음 한 빨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일상의 노동을 통해 힘을 얻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인기가수 겸 연기자 임창정씨가 출연료 없이 공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데.
“‘빨래’를 만들고 어려운 적도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신다. 제작 스폰서가 나타났고, 공연을 보고 출연하고 싶다고 하시는 임창정씨, 학전소극장에서 무기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김민기씨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점에서 일하다가 연출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외환위기 때 대학을 졸업했다. 다들 큰일이라 말했고, 일하면서 정리해고와 시도 때도 없는 야근을 보며 착취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출을 다시 공부하고, 일한 경험을 살려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보습학원 강사 시절의 경험을 살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쑥부쟁이’ 설화를 패러디한 뮤지컬 ‘쑥부쟁이’를 만들었고, 조선 중기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를 다룬 마당극도 만들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어디든 갔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재밌고 소외계층과 나누는 것도 좋다. 연출과 제작에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기회를 찾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1978년 여성 방직 노동자들의 ‘동일방직’ 투쟁을 다룬 뮤지컬 ‘팩토리’를 준비 중이다. 여성들의 의리, 공장에 다닐 수밖에 없지만 꿈꾸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느리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다룬 연극 ‘빵’도 준비 중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