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꿈 끝에는 좌절과 우울만 남을 뿐
자녀의 성공 기쁜 일이나 내 성공은 아니다

한 나라의 발전 정도나 선진국인지의 여부를 가늠하는 지표는 일반적으로 국민총생산으로 불리는 GNP다. 우리가 10년 전부터 달성하고자 마지않는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목표도 뿌리가 같다.

세계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경제 일변도에서 삶의 질과 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하였고 삶의 질을 반영하는 대안지표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회발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고 그런 발전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의 개발에 관심을 쏟게 된다.

지난달 말 부산에서 개최된 OECD 세계포럼도 같은 맥락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과 웰빙, 삶의 질 향상을 통한 국민의 행복 증진, 진정한 발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측정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각종 조사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생활 만족도는 낮게 나타나고, 객관적 지표를 보더라도 우울증과 자살률 수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여성의 행복지수,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여성들은 왜 이렇게 불행하다고 느낄까? 호주제가 폐지되고,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는 등 많은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의식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행동은 의식 수준보다도 지체되는 제도와 의식, 의식과 행동 간의 괴리가 여전하다는 현실에서 고단함과 좌절을 느끼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더불어 삶의 목표를 너무 원대하게 잡는 것도 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역사 속의 위인들 예컨대 애국지사, 퀴리부인, 빌 게이츠처럼 큰 인물이 되도록 교육받았고 여전히 자녀들도 그렇게 교육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확률적으로 봤을 때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다. 60억 인구 중 100명 안에 드는 위인이 되기란 로또 당첨 확률보다도 낮지 않은가. 안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데도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듯이 사람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애쓴다. 그러니 남는 것은 스트레스요 좌절이요 우울이다. 사소한 것에 (그러나 소중한 것에) 만족해하며 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하루하루의 평안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남는 일이요, 확률적으로도 도달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여성들의 또 하나의 굴레는 자녀 뒷바라지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취업 중단은 영유아 자녀를 두었을 때뿐 아니라 고등학생 자녀를 두었을 때도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대학 진학에 엄마의 역할과 시간 투자가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 여성의 노동공급 행태는 남성과 유사해지고 있다. 취업행동이 가구소득 등 외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정도를 나타내는 노동탄력성이 기혼 여성의 경우 1980년에 0.8에서 2000년에 0.4로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엄마의 보살핌과 간섭은 계속되지만, 머리가 큰 아이는 자기주장과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이에 엄마는 급실망한다. 서양 같으면 자녀 교육의 목표가 독립시키는 것이므로 반겨할 일이지만 우리는 자녀가 떠나는 것이 어째 섭섭하고 허전하다.

자녀의 성공이 기쁜 일이지만 곧 내 성공인 것은 아니며 자녀의 실패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가 무엇인지 그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녀 교육의 최종 목표는 자녀를 독립된 개체로 내보내는 것이라 믿고, 자녀의 삶이 곧 내 삶이 아닌, 나의 하루하루가 어떠하기를 바라는지 곰곰 생각하고 이뤄나가는 내 작고 소중한 꿈을 찾으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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