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
여성 감독의 ‘입양’ 소재 데뷔작으로 관심

가을의 막바지 국내 극장가에 입양을 소재로 한 작은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되어 조용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지난 8월 개봉된 후 전국을 돌며 상영을 이어오고 있는 ‘나무 없는 산’(감독 김소영)과 입양아 출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점과 이창동 감독의 제작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여행자’(감독 우니 르콩트)에 이어 입양을 소재로 한 가족 잔혹극 ‘귀향’(감독 안선경)이 5일 관객들에게 공개됐다. 3편 모두 여성 감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귀향’은 가장 독특한 영화로 기억된다.

“‘여자 김기덕’의 출현?” 영화 ‘귀향’을 본 후 가장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팜므파탈적인 여성 캐릭터, 광기어린 주인공들의 모습 등 많은 부분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 그러나 여성 감독의 작품이라서일까. 다른 점이 있다면 여주인공이 수동적인 여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폐허와 같은 음산한 분위기의 강원도 폐광촌의 허름한 한 모텔에 한 청년이 찾아온다. 청년의 이름은 ‘루카스’(박상훈). 어린 시절 호주로 입양되어 ‘주성찬’과 ‘루카스 페도라’라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그가 30여 년 전 자신을 버린 한국 땅을 찾아온다.

모텔의 여주인 ‘성녀’(박지아)는 자신의 손으로 키우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아기의 기억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여성. 아이를 위해 준비한 장난감이며 동화책들이 방 안에 가득하고 아이의 흔적을 찾아 매일 수녀원 근처를 배회하는 그는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픈 과거의 기억은 광기가 되어 모텔 손님을 대상으로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그런 그의 곁에는 그림자처럼 성녀를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이화시)가 있다.

영화에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모텔이라는 낡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살인을 거듭하는 젊은 여자와 그의 곁에서 살인을 막고자 하는 늙은 여자, 그리고 낙태 수술을 당할 뻔하다 도망쳐 낯선 땅 대구를 방황하다 홀로 출산을 감행하는 10대 소녀 ‘소연’(김예리)의 이야기는 영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줄기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원죄와 구원, 버린 자들의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실존주의의 대가 카뮈의 희곡 ‘오해’에서 모티브를 얻어 입양이라는 소재를 접목했다는 신인 여성 감독의 이 영화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모텔의 성녀와 늙은 여성의 관계는 무엇인지, 왜 그들이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성찬과 성녀의 관계의 진실은 무엇인지, 영화는 자세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행에 편승하려는 가벼운 작품들이 가득한 영화계에서 데뷔작으로 개성 있게 고집을 밀고 나가는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감독 안선경, 주연 박지아·박상훈, 18세 관람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