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사람들이 새의 이름을 말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러한 언어의 힘으로 인해 영국처럼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돈의문’ ‘숭례문’ 등의 거창한 이름도 역시 그러한 언어의 힘을 믿은 데서 기인한다. 사물에도 이름을 짓는 데 심사숙고하여 의미 깊은 이름을 짓는데, 하물며 사람의 이름을 짓는 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 근거이며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가끔 이름풀이를 해주곤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있으면 ‘알 지’ ‘넓을 혜’의 한자 뜻을 풀어 ‘넓게 알아서 지혜로운 사람이 돼라’는 뜻의 이름이라고 말하지 않고, ‘넓게 알아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온 세상에 그 지혜로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식이다. 사이비 이름풀이 같지만 효과는 꽤 좋다. 이러한 이름풀이를 듣고 나면 학생의 얼굴이 발개지면서 기쁨으로 빛나는 것이 느껴진다.
‘너만 지혜로워져라’가 아니라 ‘너의 지혜로움으로 온 세상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더해지면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이름이란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특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또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자기’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세상’으로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름을 풀이할 때에는 ‘이기적’으로 해석해주지 않고 ‘이타적’으로 해석해주어야 아이가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넓은 안목을 가진 존재로 자라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말은 존재의 집이다. 인간은 말로 만든 집에서 산다”라고 했다.
우리는 말로 우리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말에 창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에는 힘이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우리의 존재 근거인 ‘이름’에는 존재를 창조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자녀에게 스스로의 이름에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