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낙태논쟁 본질과는 확연히 달라
출산정책·기형적 가부장제에 바탕 둬

지난 10월 18일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전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소속 600여 명의 젊은 의사들이 불법 낙태 근절을 선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1월 1일 불법 낙태 근절운동 선포식을 연 뒤 전국 산부인과 병·의원에 동참을 촉구하고 참여 의사를 묻는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 하며,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는 병·의원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그 명단을 공개하고 전부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한다.

“생명의 존엄성에 입각하여 비윤리적인 행위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심각한 저출산과 급속도로 고령화되는 사회 속에서 노동하는 인구의 재생산 문제를 걱정하는 ‘건강한’ 청년들의 ‘애국심’으로까지 비치고 있다. 낙태와 관련된 이슈 파이팅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에서 산부인과 의사들로부터 촉발된 논쟁은 의미심장하기보다 아이러니로 비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서구에서 낙태와 관련된 논쟁은 여성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을 뿐만 아니라, 진보·보수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주요 경계가 되어 왔다. 미국에서는 제2기 여성운동의 물결 속에서 여성건강 운동이 시작되었고, 낙태가 불법이던 당시,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권과 결정권의 관점에서 낙태권이 제기되었다. 이는 이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첨예한 대립 선을 넘어 전 지구적 여성의 재생산 권리에 대한 감수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서구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낙태문제는 공적·학문적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으며 한 번도 제대로 된 논쟁의 지형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우선 기독교 윤리를 저변에 깔고 있는 서구와 다른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기저에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 건설과 근대화 과정에서 과다 출산이 문제시되던 한국 근대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박정희 정권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인구 유지가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정부 주도의 강력한 가족정책을 시행했으며, 이에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제5조 ‘모체의 건강을 저해 혹은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낙태할 수 있다)에 따라 낙태는 암묵적으로 허용 혹은 조장되어 왔다. 또 하나의 요인은 남아선호 사상과 연관된 선택 낙태와 연관된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한때 경상도 지역, 셋째 아이의 성별 비율에서 남초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종교나 윤리적 요인이 한국적 현실에서의 낙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형법상 살인죄로 규정되고 있는 낙태가 국가의 출산통제 정책과 기형적 가부장제로 인해 오랫동안 아무런 제재 없이 실행되어 왔으며 논쟁의 실마리조차 제공하지 않은 근본적인 토양을 제공했던 것이다. 물론 출산과 관련된 의료보험 수가가 지나치게 낮은 산부인과 병원의 수지타산과 관련된 셈법이 낙태를 ‘용이’하게 ‘부추긴’ 측면도 작용했다고 본다. 이러한 지점이 바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가 불법 낙태 근절이라는 명제를 들고 나오게 한 배경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낙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몸과 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의 몸은 성별로 다른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는 그릇이자 자연스럽게 역할 분리가 나뉘는 생물학적 소여라 인식되어 왔다. 이에 따라 건강한 남성의 몸은 노동하는 주체로 연결되며, 여성의 몸은 출산과 육아, 양육, 성적 욕망의 대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따라서 노동 참여율과 상관없이 여성의 가장 큰 사회적 임무는 생명 재생산과 연관되며, 마땅히 육아는 여성의 몫이 되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장애가 되거나 일상의 삶에 제약을 가해 왔다. 섹슈얼리티가 본질적인 욕망의 발현이라고 사회화된 남성들은 성적인 주도권을 쥐는 반면, 관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성이 지게 된다. 불법 낙태 근절을 외치는 이들은 대한민국이 바로 그런 사회인 것을 망각한다.

따라서 낙태 금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낙태를 구성하는 의미 지형이 무엇인지, 낙태의 권리가 여성에게 주어진 적이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낙태권은 안전한 낙태를 할 권리이자 하지 않을 권리 모두를 포괄한다. 아직도 많은 여성은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에 고통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 요인으로 원하는 임신을 못하거나 종결해야 하는 여성들이 있다. (아동)성폭행과 원하지 않는 임신, 십대 미혼모와 미혼부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제약의 문제, 윤리교육에 그치는 성교육 현장, 날로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의 증가, 여성 비정규직의 확산과 여성 노동 M자형 구조 등의 문제는 모두 표면상 드러나는 ‘낙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노동권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사회, 여성과 남성의 몸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거나 왜곡된 사회, 성별화된 섹슈얼리티가 만연한 사회, 사적·사회적·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여전히 남성에게 있는 사회가 바로 ‘불법 낙태의 근원’이다.

낙태는 결국 가부장제, 자본주의, 계급과 인종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자 상대적 약자가 살아가기에 안전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협소한 재생산의 권리가 아니라 ‘재생산의 정의(justice)’ 더 나아가 ‘사회적 정의’ 관점에서 낙태와 여성의 몸·성에 대한 권리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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