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모녀 성폭행 사건 해결 위해 뛰는 김태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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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으로 연일 인터넷 여론이 뜨겁게 달궈지던 지난 9월,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제자가 당해온 또 다른 아동 성폭력 피해(일명 ‘은지 사건’)를 밝힌 글을 올렸다. 포항에서 지적장애를 가진 모녀가 수년간 성폭행을 당한 뒤 사회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고 밝힌 글이었다. 글을 올린 김태선씨가 고발한 이 사건은 지난해 6월 KBS 2TV ‘추적60분’을 통해 이미 방영이 됐었다. 그러나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다시 네티즌과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 네티즌들은 쉼터에 보내졌던 성폭행 피해 아동이 다시 가해자들이 사는 동네에 여전히 방치돼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한편, 한 차례 더 올린 글에서 우리 사회 아동 성폭력 지원 시스템과 책임 기관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김태선 교사에게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아동성폭력에 관한한 거의 준전문가가 되어 직무유기를 하는 각계각층의 ‘어른들’에게 날카롭고 깊숙한 ‘잽’을 날리고 있는 여자, 얼굴 모자이크 없이 고발 방송 인터뷰를 하는 여자, 아동 성폭력 신고 의무자인 교사로서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넘게 자기 자식도 아닌 한 아이를 돕고 있는 교사. 그가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인권운동가 못지않게 일상에서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지난하고 고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끌어가고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했다.

검·경찰에서 ‘전례’‘관례’ 물리도록 들으며 난감

포항공항에서도 20여 분을 차로 달려야 하는 한 시골마을의 초등학교 미술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방송에서 본 것보다 얼굴도 작고 얼굴선도 훨씬 부드러웠다. 체구도 가냘팠다. 그러나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가냘프고 부드러운 외모를 가진 그의 입에서는 통렬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은지를 돕기 위해 쫓아다니면서 “전례대로 했다, 관례대로 했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그는 잘못된 전례를 깨고 “판을 새로 짜려는 시도를 안 하는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가 처음으로 꼽은 직무유기 기관은 은지가 살던 지역의 ‘면사무소’다.

“은지네 가정방문을 갔더니 지적장애 아동인 은지와 마찬가지로 중증 지적장애인 은지 엄마와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남동생 이렇게 세 식구가 씻을 데도 제대로 없고 잠금장치도 없는 옛날 허름한 집에서 열악하게 살고 있더라고요.(중략) 제가 가기 1년 전 시숙이 수급비를 갈취한 걸 면에서 알고 800만원을 은지 모녀에게 다시 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갈취 당한 전례가 있으니까 면에서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관리를 안 한 거예요. 돈만 던져주고요. 할머니 돌아가신 후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 처했을 때 면 복지사님을 여러 번 만나 부탁했어요. 성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도와달라고. 결국 제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났고요. 복지국가인 우리나라에 이 세 명의 장애 가족이 보호를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는 이야기죠.”

검찰이 마련한 집에서 성폭행 도대체 믿을 수 있나요?

그는 은지 가족의 안타까운 형편을 알게 된 이후 면사무소의 복지사, 검찰 직속 기관인 피해자지원센터 등을 쫓아다니며 은지 가족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은지 가족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대신 검찰에서 ‘사랑의 집’을 지어줬다. 그런데 그 검찰이 지어준 ‘사랑의 집’에 사는 은지와 은지 엄마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저는 처음에 누가 감히 검찰 ‘사랑의 집’ 이름을 달고 있는 집에 사는 애를 성폭행할까 의아해했어요. 근데 제가 은지 숙모를 통해 듣기로 그전에 그 지역에 지어진 사랑의 집 1호 아이랑 은지가 친하게 지냈는데, 동네 어른들 말이 그 애 가정 또한 관리가 잘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집만 지어주는 것이 다가 아닌데 오히려 집 지어줬다고 사진 찍고 방송 내보내고 온갖 생색을 내다보니 그것이 오히려 범죄 대상으로 표적화 시키지 않았나 싶어요.”

그가 검찰에 실망한 이유는 이뿐이 아니었다. ‘은지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실망을 넘어 그를 절망스럽게 했단다.

“저라면 검찰이 지어준 집 애가 성폭행을 당했다면 자기들이 케어해 주고 집 지어준 그런 애가 성폭행을 당했으니까 화가 나서라도 수사력 다 동원해서 범인부터 잡아내라 그럴 것 같아요. 전 맘만 먹으면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애 입에서 범인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도 나오고 가해 학생이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녀서 동네에 소문도 다 났다고 하더군요.”

수사 의지가 없기는 일선 경찰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은지사건의 담당 경찰이 한 일간지 기사를 통해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에 대한 반론이 없는지 기자가 물어보려던 참에 그가 먼저 “경찰의 직무유기”를 지적했다.

“신뢰자 동석규정’이 있다는 걸 알고 경찰이 은지의 진술을 들을 때 저도 동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원스톱지원센터, 해바라기아동센터 관계자와 관련 복지사에게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런 배려 한 번 없이 수사를 열심히 하셨다니 할 말이 없죠.”

그는 또 “과학수사를 했다”는 경찰 수사 과정이 너무 허술했던 것을 어이없어 했다.

“은지 입에서 가해자 한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어요. 그 진술대로 알아보니 비슷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런데도 경찰은 그 남자가 빠진 사진 몇 장을 은지에게 보여주고 범인을 고르라고 해놓고 (은지가)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 증거능력이 없다고 했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는 은지를 돕기 위해 민간단체나 정부 산하 기관들을 찾아다니면서 또 한 번 절망하고 분개했다. 검찰의 피해자지원센터, 원스톱지원센터, 해바라기아동센터, 굿네이버스 등 전문적인 지원을 해줄 것처럼 간판을 내건 단체들이 서로 “이리저리 돌리면서” 책임을 미루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직무유기에 대한 그의 고발은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화제를 돌려 ‘그’에 대해 물었다.

전교조 회원이긴 하지만 학창시절엔 학생운동 근처에 간 적도 없다고 했다. 여성단체나 아동성폭력 관련 시민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저 자신의 발령지에서 만난 은지와 은지 가족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관심을 기울이다가, 힘없는 어린아이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무책임하고 썩은 어른들”에게 분노하다가 ‘외로운 투쟁’을 벌이게 된 것뿐.

그는 자신을 “자연주의자”라고 칭하면서 은지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아름다운 바닷가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얘기했다. 그림이 그려졌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분교의 미술 선생님이 전교생이라 봐야 7명인 아이들을 데리고 “개울가에서 고디(다슬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도 그리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몇 안 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도서관 건립을 위한 예산 지원을 따내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여성단체 근처도 안 가봐

외로운 ‘쌈닭’ 투쟁 일관

개울가에서 고디를 잡아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그는 2년째 고디도 못 잡고 ‘쌈닭’ 노릇을 하느라 병원 신세도 졌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지난해 2월 정신적·육체적 과로를 이기지 못해 열흘 남짓 병가를 내고 병원신세를 졌던 일을 ‘무단결근’이라고 했다. 일부 교육계 어른들이 직무유기도 모자라 그를 마치 문제 교사인양 단단히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저에 대한 온갖 음해가 주변사람들을 통해 들려오더군요. 아프지도 않은데 병가 내고, 공상처리를 안 해줘서 앙심을 품고 일을 벌이고 있느니, 이단 종교를 믿는다는 둥.”

병원 신세를 져가면서, 온갖 음해를 당하면서, 때로는 오해를 받아가면서도 은지와 은지 가족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2시간 30분 남짓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그를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첫째는 제자에 대한 ‘애정’과 ‘이타심’이다. 그는 은지를 자주 ‘우리 애’ 혹은 ‘내 새끼’라고 부를 만큼 제자인 은지에 대한 애정이 깊었고,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여기고 돌보는 ‘이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는 “자신이 좋은 선례로 남아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이었다.

“많은 교사들이 지켜보고 있거든요, 이 사건을. 그런데 나 하나만 문제교사로 남고 달라지는 게 없으면 다른 교사들도 (아이들을 위해) 안 움직이지 않을까요. 저는 이게 무서워요. 그래서 계속 움직이는 거고요. 제가 좋은 전례로 남고 싶어요.”

셋째, 그 스스로 꼽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목사인 남편의 지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해 부르짖는 사람의 외침을 외면하면 네가 부를 때 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도 두렵더라고요.(중략) 제가 결혼을 잘 한 것 같아요. 남편이 ‘당신 옳은 일 하는 건데 하라’면서 많이 도와줘요. 제가 밖에서 온갖 욕먹고 들어왔다고 말하면 ‘내가 당신 욕먹고 오라고 아침에 뜨신 밥 해줘 내보냈는지 아노?’라면서 같이 분개해주고요.”

믿음직한 남편 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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