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헌신, 이득보다 손해 자처
일상에서 욕망 제어를 모범적으로
시연하는 작은 영웅이 필요한 시대

윌리엄 포시스(W. Forsyth) 감독의 ‘Local Hero’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피터 리거트(P. Riegert)와 버트 랭카스터(B. Lancaster)가 묵직하지만, 그들답지 않게 밝은 배역을 맡아 관객 모두를 흐뭇하게 감동시킨 작품이다. 미국의 한 석유 대기업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한 작고 아름다운 어촌에 거대한 정유공장을 차리고자 토지 매입을 추진한다. 보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땅을 팔고, 해변을 팔고 이사 나가게 함으로써, 회사에 큰 이득을 남겨 줄 정유소를 널찍하게 차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회장인 버트 랭카스터는 관심과 기대가 크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마을 사람들과의 토지 매매 계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회장이 직접 그 마무리를 하러 이 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는 이 마을의 아름다음과 여유로움에 반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집착에 놀란다. 이 프로젝트의 실무책임자였던 리거트와 카팔디 역시 이 마을에 애정이 깊어진 상태다. 그래서 리거트와 올슨의 집요한 설득과 애원으로 랭카스터는 그 거대한 돈 덩어리 프로젝트를 기꺼이 포기한다. 결코 쉽지 않은 포기를 그들은 결국 해낸다.

랭카스터 회장은 마음을 바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별을 보는 천문관측소를 세우고, 해저세계를 엿보게 하는 해양연구소를 세운다. 마을 주민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 셈이지만, 사실은 그들이 더 큰 선물을 받는다. 경제적 욕망과 그 욕망의 하수인 역할을 포기하면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통찰을 얻은 것이다. 감독은 이들을 ‘작은 영웅들’(local heroes)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작은 영웅들이 살벌한 원유 비축기지로 전락할 뻔한 이 조용한 마을을 구해낸 것이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거역하기란 매우 힘들다. 합리적이고 다수가 동의한다는 이유로 의미와 가치를 폄하시키고 훼손시키기도 하는 집단과 여론의 힘을 거스르기는 참으로 힘들다. 이것이 힘든 이유는 이득의 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이 힘든 이유는 마음만 먹으면 엄청난 이득이 생기는데 그 욕망을 제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부자일수록 그 욕망의 실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욕망의 포기 또한 그만큼 더 어렵다.

오늘날은 카이사르(시저)나 나폴레옹 같은 전쟁의 영웅시대는 이미 아니다. 경제나 권력의 욕망을 대의를 위해 제어하고, 그 대신 희생과 봉사를 용기 있게 실행할 줄 아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다. 전쟁으로 외침을 막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는 큰 영웅이 필요한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희생과 헌신으로, 이득보다는 손해를 자처함으로써, 대의를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욕망의 제어를 모범적으로 시연하는 작은 영웅이 필요한 시대다.

맥아더 같은 전쟁영웅이 환호 받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바마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흑인이 환호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바마에 대한 기대는 전쟁에 이기라는 그런 큰 기대가 아니라, 희생이나 봉사 그리고 절제 등과 관련된 작은 미덕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이유에서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작은 영웅들의 중요한 행동적 특징의 하나는 손해를 무릅쓴 희생과 헌신이다. 1983년 7월 영등포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구하다가 자신의 두 발을 잘린 역무원 김행균, 1939년 일본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비자를 발급하여 유대인을 나치의 사지로부터 구해낸 열방의 의인이자 일본의 오스카 쉰들러로 불리는 일본인 외교관 스기하라 지우네, 1898년 인종차별로 무고를 당해 종신형에 처해진 불운한 드레퓌스 대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구명에 나선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 등이 바로 이런 작은 영웅들이다.

역사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만큼 선한 방향으로 변해 온 것이다. 역사는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바뀌어 갈 것이다. 희생과 헌신보다는 욕망의 실현에 집착한 정치가들에 의해서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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