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었다

10여 개월 전 아침 8시 20분쯤 피해 아동이 등굣길에 나섰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시작된 기자의 ‘고행’은 피해 아동이 지나갔던 계단을 거쳐 범행이 일어난 화장실 앞을 거쳐 피해 아동이 다니는 학교 정문 앞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범행 현장을 접하며 기자가 느낀 충격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 가장 뚜렷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범행이 일어난 지역의 거리 풍경이 주택과 아파트 단지를 끼고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여느 초등학교 등굣길 풍경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일부 언론에서 보도했듯 음습한 우범 지역의 느낌이 강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범죄의 범행 장소가 피해자 혹은 가해자 모두에게 친숙한 환경인 경우가 5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와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범행 장소는 피해 아동이 다니던 학교 후문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곳이기도 하고 가해자가 사는 집과도 1㎞ 이내 거리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곳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동네 주민이 문이 자주 잠겨있지 않는 공중 화장실을 범행 장소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성맹수는 다른 아동 성폭력 범죄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마디로 조두순 사건의 그 현장은 ‘어느 곳에서나 범인이 노리기만 하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었다.

기자가 범행 지역을 찾은 14일 월요일 당시도 혼자 혹은 이웃 친구들과 짝을 지어 학교로 가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등교 지도를 돕는 엄마들이 횡단보도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고 버스정류장엔 출근하는 동네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각이라 대부분의 상가가 문을 열기 전이었지만 일찍 문을 여는 문구점 몇 곳과 24시간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아침 풍경이었다.

이렇게 익숙하고 평범한 거리의 대로변에서 고작 10여m 떨어진 별로 후미지지도 않은 골목 안쪽, 등교를 지도하는 학부모가 서 있는 횡단보도에서 버스정류장 쪽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건물 출입구가 보이는 ‘주상복합 연립’의 1층 화장실이 바로 범행 장소였다. 반지하에는 교회, 1층엔 상점 두 개가 세 들어 있고, 2,3층은 각각 세 가구가 살고 있는 흔하디흔한 건물이었다.

피해 아동인 나영이(가명)가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가 등굣길 동선을 거꾸로 밟아 봐도 다세대 연립주택이 좀 많을 뿐인 평범한 서민 주택가 골목이 펼쳐졌다. 특이점이라고는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보니 한자 간판의 상점이 더러 보이고 상가건물에 소규모 교회가 다소 많이 들어서 있다는 것뿐. 역시 딱히 으슥하거나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무슨 대단한 취약 지역이 아니에요. 다만 그때는 겨울이어서 그 시간에도 지금보다는 어두침침하고 이른 아침이라 인적이 좀 드물었다는 정도지요.”

사건 현장 주변에 있는 문구점 주인의 증언이다.

“범행이 발생하지 않으면 취약지역이 아니고, 범행이 발생하면 취약지역이라고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란 당시 사건 담당 형사의 말은 아동성폭력 범죄가 일어나는 취약 지역이 따로 있다는 식의 사회통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