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이상, 악녀, 교수와 여대생 등 다양한 주제
우리나라 공연의 메카인 대학로에도 이와 비슷한 ‘오프 대학로’가 있다. 대학로 연극의 본질을 찾고자 만들어진 실험적인 프로젝트 ‘오프 대학로 페스티벌’의 올해 테마는 바로 페미니즘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임경식 서경대 교수는 “지난해 페스티벌을 마무리하면서 페미니즘으로 다음 주제를 잡자고 말했을 때 여러 연출가들이 이미 구상해놓은 페미니즘 연극 주제를 꺼내놓았다”고 전했다.
11월 29일까지 명동성당 근처에 위치한 삼일로 창고극장 무대에 오를 총 여섯 개의 페미니즘 연극은 여성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 작품 ‘비밀을 말해줄까?’는 극심한 월경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을 통해 “신체적, 심리적 불안상태로 고통 받는 생리이상 환자들의 범죄행위를 형법상 책임영역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4일까지 이어지는 김윤미 작 ‘상자 속 여자’는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노파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몽환적인 장면들로 연출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여성적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본 ‘그녀,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제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소외되고 억압받아온 거리의 부랑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거리를 떠도는 여성의 이미지로 부각시켜 그녀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고찰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이 외에도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다룬 ‘미스 줄리’,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서 악녀의 화신으로 통하는 메데아를 다룬 ‘메데아’, 교수와 여대생 간의 권력관계를 다룬 ‘종구씨와 옥순씨의 불편한 권력관계’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오프 대학로 페스티벌은 1970년대 실험극이란 명목으로 국내에 들어왔지만 고전이 되어버린 작품들을 다룬 첫 회에 이어 매년 작품성이 검증된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왔다. 이원기(청운대 교수) 집행위원장은 “8년간 초심을 지키며 ‘진짜 연극’들이 흐트러지지 않는 본질이 기반이 되는 작품들을 올리고 있다”며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도 전 스태프와 배우가 일일이 발로 뛰며 축제 1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