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제정 취지가 무색하리만큼 우리말은 성차별적 편견과 비하로 급속도로 오염돼가고 있다. 최근에는 ‘꿀벅지’ ‘착한 가슴’ ‘황금골반’ ‘초콜릿 복근’ ‘말근육’ ‘짐승돌’ 등이란 신조어도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연예뉴스 등 언론매체와 인터넷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이 단어들은 피상적으론 성적 매력이 있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지만, 맥락을 달리하면 상대방에게 성희롱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몸 고정관념 극대화

외모지상주의 부추겨

이렇듯 인터넷과 미디어가 서로 끊임없이 양산해내는 각종 기기묘묘한 신조어들의 성차별적, 외모지상주의적 특성은 그 계보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여성의 특성을 대상화해 비하하는 ‘~~녀’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져 쓰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신체나 외모에 한층 노골적이고 성적 은유를 띤 신조어들이 변형을 거듭하며 만들어지고 있다.

2006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말은 단연 ‘개똥녀’ ‘된장녀’다. 일부 남성들은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똥을 치우지 않았다고 추측되는 여성을 ‘개똥녀’라 부르며 신원을 추적, 공개했다. 역차별 피해를 강력히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은 허영심에 가득 찬 여성이란 뜻으로 ‘된장녀’란 신조어를 만들어내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녀’로 끝나는 성차별적 신조어 행렬은 끝이 없다.

이런 현상 이면의 주범은 사이버 문화의 마초성이다. 여성에 관련된 특정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즉각적으로 저급한 욕설과 당사자 개인 정보 공개가 뒤따르고 악플이 난무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그 전형이다.

과거 포르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입건된 한 여성 영어강사에게는 ‘강사녀’, 탈북 국군포로의 도움을 거절했다고 알려진 대사관 여성 직원에게는 ‘대사관녀’, 아침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군복무 단축에 반대 발언을 한 여성에게 ‘군삼녀’ 등의 호칭과 함께 당사자 모두 예외 없이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 ‘마녀사냥’이라 할 만하다. 이번 ‘꿀벅지’ 논란에서도 꿀벅지 사용 자제 요청을 제안한 여고생에 대해 ‘실제 인물이냐’서부터 ‘면상을 한 번 보고 싶다’는 등 신상공개 협박성 게시글도 올라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에선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빗대는 거칠고 조악한 신조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뚱녀’ ‘울트라 뚱녀’와 작은 가슴을 희화화한 ‘껌’ 등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쓰인 말에 더해 글래머러스한 가슴을 일컫는 ‘착한 가슴’과 ‘섹시가슴’, 성형수술로 연예인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모자라는 여성을 빗댄 ‘짝퉁녀’, 전체적으로 외모가 괜찮은데 한 부분만 못생긴 여성을 뜻하는 ‘B품녀’, 친구는 예쁜데 혼자 못생긴 여성을 빗댄 ‘하자녀’ 등 나열하기도 벅찰 지경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수연 연구위원은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성 몸에 대한 정형화된 이상에 못 미치는 여성에 대해 희화화하거나 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조어들은 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여성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대화시켜” 외모지상주의를 한층 조장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렇다면, 알파걸, 오메가걸, 골드미스, 알파맘, 슈퍼우먼 등 성공적인 사회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일련의 신조어들은 어떨까.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능력에 대한 신조어들은 능력 있는 남성을 가리키는 표현에 비해 유독 종류가 많다. 이런 용어는 일부 남성들의 ‘역차별 피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도 제시되기도 한다.

배은경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교수는 이미 “1920년대에는 ‘신여성’, 1960,70년대에는 ‘여성상위’라는 말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여성이 계속 전통적이길 바라는 보수적 시각이 남녀 간 사회적 지위 변화를 여성에게만 투사하려는 현상 때문이다. 구조화된 성차별을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부장 사회의 전통적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상에 대해 남성 중심 사회가 느끼는 딜레마와 불안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는 성차별 신조어를 막을 길은 과연 있을까. 대중매체의 양성평등을 제시하는 이정표는 이미 마련돼 있으나 심의와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성차별 표현 범람해도

방통심의 규정 적용 턱없이 적어

성차별 표현 등의 논란이 거센 데 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 오른 현행 방송통신 심의규정 제30조 ‘양성평등’ 항목을 위반한 사례는 극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2007년과 2008년을 비교해 볼 때 방송부문에서는 지상파 각각 3건과 1건, 케이블에서는 7건과 12건 등으로, ‘간접광고’(28건, 37건)와 ‘품위유지’(21건, 20건) 항목 위반 사례와 크게 대비된다. 또 통신부문은 양성평등 항목 위반 심의 사례만을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

여성의 외모를 이유로 비하하는 표현이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수차례 반복되고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는 심의결과가 의견제시에 그치고 있다.

최근의 성차별 표현 등의 논란에 관해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방송통신 심의가 비정기적으로 열리고, 규정이 포괄적이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당시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개발원(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가족부(현 여성부)는 대중매체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양성평등한 미디어 언어 개발을 위한 모니터링’을 실시, 결과 보고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진짜 사나이’ ‘늑대’ 등과 ‘영계’ ‘백치미’ 등으로 남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조한 표현, ‘부엌데기’ ‘놈팽이’ 등 특정 성을 비하한 표현, ‘쭉쭉빵빵’ ‘명품복근’ 등 남녀의 외모와 신체를 선정적으로 나타낸 표현 등이 성차별적 언어 유형으로 제시됐다.

그 뒤 2007년 국립국어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 발간한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 조사 및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서는 과도한 외모 표현을 자제하고, 성별이분법적인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할 것, 비하적인 표현을 금지하고 기존의 대안적인 표현을 활성화할 것 등을 권장했다. ‘된장녀’ ‘돌진남’ 등과 같은 당시 신조어도 불필요한 성별 고정관념을 조장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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