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6일 152호

‘통일·여성’에 시각차
‘이견 확인’ 큰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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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1991.12.6)는 분단 46년 만의 남북 여성들의 만남을 상세히 전한다.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토론회(11. 26~27)는 민족 동질성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시각차’ ‘이견’ 등의 표현으로 남과 북의 여성이 함께 가야 할 길은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1면, 7~9면). 반면 “역시 여성들은 다르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것도 큰 의미를 갖는다”는 참가자들의 반응도 전했다.

남한(공동대표 이우정 이효재 윤정옥), 북한(단장 여연구), 일본의 여성 리더들이 참가한 토론회의 주제는 ‘가부장제 문화와 여성’(남측 발제: 조형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통일과 여성’(북측 발제: 정명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참사), ‘평화와 여성’(일본 측 발제: 시미즈 스미코 참의원)이었다. 남북 여성 간 인식 차는 특히 가부장제와 관련한 부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남녀가 진정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단과 전쟁, 군사문화를 극복하는 일이 필수 과제”라는 남측 주장에 북측은 “대립과 충돌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번성에 있다”고 응수했다.

토론회는 1991년 1월 도쿄, 11월 서울, 1992년 9월 평양(주제: 민족 대단결과 여성의 역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후 책임, 평화창조와 여성의 역할)에서 번갈아 열려 이후 남북한 여성 교류의 토대가 됐다.

토론회를 준비했던 한국 측 실행위원회는 1996년 11월 발전적 해체 후 1997년 3월 남북한 여성 교류의 창구이자 여성평화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를 창립하는 모태가 된다.

<출처 : 세상을 바꾼 여성사건 101가지, 여성신문사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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