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여부 떠나 경찰 이중잣대에 분노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폭행을 한 가해자한테는 남자라는 감투권력으로 깎듯이 ‘선생님, 선생님’ 하고 폭행당한 여자한테는 여자라는 단순 솥뚜껑으로 ‘아주머니’란다. 동네 지구대에서 마포경찰서로 가면서 민중의 지팡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내 심정을 복잡하게 하고 분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게다가 당연하게도 ‘선생님’과 ‘아주머니’의 처우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가해자는 ‘남자라는’ 단순 거창한 이유 때문에 푹신한 소파로 모시고, 두려움과 모멸감에 벌벌 떠는 피해자는 나라에 세금 꼬박꼬박 내는 회사 대표라도 ‘여자라는’ 보잘것없는 사연 때문에 앉을 자리 하나 없는 것이다.

피해자만으로도 억울한데 민중의 지팡이는 ‘처벌하실 겁니까?!’ 하는 위악적인 물음만 계속해댔다. ‘처벌한다면 당신한테 더 나쁜 일과 큰 불이익이 올거얏!!’ 하는 소리로 들린 건 정말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황당한 폭행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간 내 귀에 이렇게 들렸으니, 피해자의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했으니 돈 달라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서 화가 났다-은 존중하고, 피해자의 채무관계가 없다는 말은 무시했다. 가해자가 민중의 로봇한테 사과했으니,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라는 식으로 몰고갔다.

피해자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사과한다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해서 내가 ‘피해자한테 사과하지도 않았는데 합의서에 서명하느냐’고 따지니 ‘그럼 각서라도 받아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또다시 행패 부리면 어쩔 건가 하고 염려를 하니 가해자한테 다녀온 경찰의 ‘정중말쌈’이 더 가관이다. 큰 소리 치던 가해자가 ‘누가 각서 쓰라고 하더냐?’고 물어 내가 그랬다고 전했더니 ‘처벌하라’고 했다며 숨도 안 쉬고 곧바로 ‘처벌하실 겁니까!’만 딱따구리처럼 쪼아대며,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민중의 로봇이 따로 없다. 그러면서 고소하면 취소가 안 된다며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나중에 하는 말이 더 기가 막힌다. 가해자는 저렇게 우대하고 피해자를 이렇게 방치하듯 서 있게 하느냐고 항의하던 내게 “매우 기분이 나빴다”고 경고카드를 내비쳤다.

사과하지 않으면 뭔가 불이익이라는 이자방망이가 귀싸대기라도 날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치 사과’를 하며 아버지가 생각났다. ‘살다가 어려운 일 생기면 경찰 찾아가라’던 아버지 말씀이 공염불이 되었다. 경찰공무원으로 표창까지 받은 아버지의 조언은 이 동네에서 흰소리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맞은 여자만 분하고 억울해야 하는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