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여성 성폭력 가해자에 유죄 판결 환영
‘항거불능’에 대한 피상적 이해는 아쉬워

지난 9월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지적장애 여성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선고를 내렸다. 가해자는 법정에서 구속됐다.

피해자인 지적장애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고무적인 결과다. 가해자 유죄 인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피해자와 어머니는 2년간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 노력해 왔고 그 용기와 의지로 이번 2심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에 반해 1심 재판부인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법) 제8조(장애인에 대한 간음 등)로 기소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인 지적장애 여성이 성폭법 제8조의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라는 조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결여됐고, 피해자 어머니의 과도한 개입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성폭법 제8조의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법원의 협소한 해석이자, 8조 적용 및 지적장애에 대한 몰이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1심에 비해 2심 판결은 매우 진일보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가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형사 7부도 1심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인 지적장애 여성의 ‘항거불능’ 상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성폭법 8조를 적용하지 않고 형법 302조(심신미약자 간음 등)로 공소변경을 한 뒤 가해자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바 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이미 성폭력 범죄 전과로 인해 장애인작업장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하고 있던 자였다. 피해자인 지적장애 여성은 가해자를 작업장 교사로 알고 있었고, 때문에 그 관계에서 자신이 가해자에게 잘못을 하게 되면 작업장을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가해자는 성폭력을 할 수 있었고, 피해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놓였던 것이다.

성폭법 제8조의 핵심 조문인 ‘항거불능 상태의 장애인’에 대한 판단에서 장애 자체로만 ‘항거불능 상태’ 여부를 따져서는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없다. 지적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망과 상황을 제대로 보고, 그러한 맥락과 함께 ‘항거불능 상태’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상의 장애에 대해 가장 진일보한 이해를 드러낸 판결은 지난 2007년 울산 지적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피해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사건에선 2심까지 가해자에게 무죄선고가 내려졌지만, 당시 대법원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에 대한 해석을 장애 그 자체를 포함해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판시를 했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장애인이 장애 그 자체를 포함해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로 놓일 수 있음을 고려하여 내린 판시다.

그러나 이후 여러 지적장애 여성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이런 판시가 단지 이례적인 판례로서만 남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럽다. 앞으로 사법부의 지적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더욱 파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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