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한 피해 여성, 6개월 후 또다시 성폭행 당해
신고한 피해 여성, 6개월 후 또다시 성폭행 당해
  • 조승미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18 14:14
  • 수정 2009-09-18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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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야 하나" 경찰의 허술한 보호 개탄
경찰 인권교육, 성폭력 수사지침 정비 뒤따라야
지난 8일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25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A(39)씨를 구속했다. A씨는 2000년 7월부터 지난 10년간 고양 의정부 파주 등 경기북부 지역에서 성폭행을 일삼아 왔다.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피해 여성 중 한 명이 A씨에게 두 차례나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여성은 2000년대 중반 첫 피해를 본 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으나, 6개월 뒤 첫 피해 장소(집)에서 또다시 피해를 입었다. A씨에 대한 광역수사는 지난 2007년 시작됐기에, A씨에게 두 번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의 사건은 당시 해당 관할경찰서의 소관이었다. 이 피해 여성이 A씨에게 재차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A씨가 검거되면서 비로소 드러났다.

연쇄 성폭행범 A씨가 구속된 후 “마음에 들 경우 피해 여성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는 말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으나,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한 피해자에게 두 차례의 반복 성폭행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A씨의 범행 지역이 워낙 넓고, 잦은 빈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 피해 여성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피해 시기 사이 A씨의 (다른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A씨의 특정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지목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측은 “사건 신고 뒤 순찰 등을 강화했으나, 지역 보안시설의 미비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한다.

동일한 장소에서 6개월 사이에 일어난 동일범에 의한 성폭행 사건을 두고 이 피해 여성이 첫 신고한 관할 경찰서가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건을 들은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면 이사를 가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단 말인가”라며 개탄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3개월간 청주, 전주, 인천 지역에서 각각 6년간 25차례, 8년간 26차례, 15차례 연쇄성폭행을 일삼던 범인들이 붙잡히면서, 반복해 성폭행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이처럼 신고까지 마친 피해 여성이 첫 피해를 입은 장소에서 또다시 피해를 입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왜 일어날까? 전문가들은 “경찰의 기존 성폭력 피해자 신변보호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는지 꼭 짚어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등에는 피해자 신변 안전조치와 수사 시 피해자 보호조항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된 ‘피해자 서포터’와 2005년부터 개소된 ‘원스톱지원센터’ 등 지역 내 보호 제도도 있다.

‘피해자 서포터’는 성폭력 범죄 발생 초기에 지정된 서포터(수사 경찰관)가 단일화된 피해자 접촉창구가 돼 신변보호, 상담, 정보제공 등을 담당하고, 사건 종료 후에도 수사진행 상황을 통지하는 등 연락체제를 유지해 보복 우려를 잠재우는 역할이다. 원스톱지원센터는 현재 전국 시·도 권역 16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경찰청의 수사 지원과 의료지원 등의 일원화된 연계가 그 목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형식적인 보호가 실질적인 보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선 경찰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은 “수사 담당 경찰관이 수시로 피해자에게 신고와 보호, 수사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임을 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피해자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지만, 신변보호 및 안전 확보를 위해 경찰과 피해자가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도 이런 조치는 필요하다. 성폭력 전담 조사관 실무교육을 해 온 김태영 전 대구지방경찰청 인권위원장은 “경찰관 성폭력 수사와 관련한 인권교육과 간담회 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편으론 현재 경찰 내부에서 쓰이는 성폭력 수사 지침을 좀 더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정비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수사관 개인의 자질과 능력만으론 여러 형태로 빈발하는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종료 후에도 성폭력 피해자 보호 대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성폭력 수사 지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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