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강간 성폭력 등에 여성계 의견 배제해

지난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원장 박상기)이 주관한 ‘형법개정의 쟁점과 검토’ 학술회의에서 형법개정연구회(한국형사법학회, 한국형사정책학회)가 발표한 형법개정시안(이하 ‘개정시안’)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성폭력의 폭행·협박 기준 완화, 유사성교행위를 포함하는 강간 개념의 확대, 부부강간죄 입법화 등 그간 여성계가 꾸준히 주장해온 개정의견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간 형법개정연구회의 의견이 형사법 개정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감안할 때, 이번 개정시안은 내년 하반기 정기국회 제출 예정인 법무부의 형법전면개정안의 내용을 미리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개정시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해 강간죄 피해자에 남성도 포함시켰다. 또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로 규정된 성폭력 범죄를 중대한 법익 침해행위로 간주해 ‘비친고죄’로 변경하는 한편, 폭행·협박을 통해 피해자에게 제3자의 간음이나 추행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성적강요죄’를 신설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폐지 논란을 겪고 있는 ‘간통죄’와 현재 위헌심사 중인 ‘혼인빙자간음죄’는 삭제했다.

반면, 기존의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요구하는 최협의의 폭행·협박 기준을 단순한 폭행·협박 정도만으로 완화하자는 여성계의 의견은 수용되지 못했다. 또 유사성교행위를 강간 개념에 포함해 엄하게 처벌하자는 의견 또한 신중을 요한다는 점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아내강간 등 부부 간의 성폭력이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당연히 처벌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끝내 입법화되지 못했다.

지난 2005년 이후 성폭력 관련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형법개정운동을 추진해온 여성계는 이번 개정시안에서 여성계의 주요 주장이 빠진 것에 대해 ‘반쪽짜리 입법’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특히 유사성교행위를 강간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는 이상 강간죄의 객체 변경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법학계와 여성계의 형법개정 논의 과정에 모두 참여했던 이호중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형법개정연구회의 논의과정에 대해 “변화는 있지만 여전히 인식의 차이가 커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며 “결국은 성폭력 범죄와 피해자 이해를 전제로 한 법학자들의 사고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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