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것들
우리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것들
  • 이나영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09.09.18 11:27
  • 수정 2009-09-18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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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짓 후세인 사건을 생각한다
"조선×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
한국사회 가부장 문화, ‘성’ 매개로 지배권력 행사
최근 연이어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을 앞에 두고 필자는 한국인의 무의식에 깊게 똬리 틀고 있는 민족주의의 망령과 역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하나는 사적인 공간에서 한 한국(인)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2PM의 ‘재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보노짓 후세인 사건이다.

지난 7월 한국인 여성과 동행하여 버스를 타고 가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씨에게 “냄새 난다” “더럽다” “아랍인이냐?” 등의 발언을 했던 한국인 남성이 약식 기소됐다. 사건의 상세한 내용은 이미 지난 1047호 ‘여성신문’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바, 지면의 한계 상 본 시론에서는 보노짓 후세인 사건의 주요 쟁점 및 함의를 위주로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보노짓 후세인 사건은 추한 인종적 민족주의의 역상인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망령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한국인은 외국인들로 분류되는 타자의 상대적 의미로 구성되며, 여성은 정상적인 인간의 기준이 되는 ‘남성성’의 역상으로 구축된다. 이때 외국인을 보는 시각은 기실 서구 백인 남성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우리 스스로를 보는 방식이며 이는 다시 ‘우리 민족’이라는 경계에 들어올 수 없는 타국 남성들에게 투사된다.

보노짓 후세인씨는 인도 출신이지만 가해자 한국인에게 그는 피부색이 ‘진한’ ‘Arab(아랍)’인일 뿐이다. 한국인이 보노짓 후세인씨를 “You Arab(너 아랍인이냐?)”이라고 하는 순간, 그를 구성하는 다른 정체성들은 묵살된 채, 그는 절대적 타자로 대한민국의 경계 밖으로 밀쳐진다.

서구 남성의 세계관과 ‘권력 판타지’(power-fantasy)로서 오리엔탈리즘이 있다면, 제국주의, 식민주의에 저항한다면서 이를 투사하여 다른 타자들에게 실천하는 피식민지자의 방식이 있다. 가해자 한국인의 태도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넘어 저급한 ‘아류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것이다.

이중의 식민을 겪은 한국의 근대사를 살펴볼 때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고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배타적 민족주의만으로는 오리엔탈리즘이 근거한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라는 인식론적 틀에 전혀 손상을 입힐 수 없으며, 오히려 민족과 인종의 경계와 위계는 더 강고해진다는 역사적 교훈을 참고할 때 더 서글퍼진다(‘일본군 위안부’나 ‘양공주’의 사례를 보라!). 민족주의가 강한 곳에서 늘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게 마련이며 제국주의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확장될 뿐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역상이자 상보적 존재로 적대적 공범관계에 있다.

둘째, 이번 사건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민족주의가 젠더 이데올로기의 구축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성주의자들은 민족주의가 어떻게 성별화되어 있는지 꾸준히 지적해 왔으며, 젠더 이미지나 은유가 없으면 민족에 대한 묘사나 표현양식마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해 왔다. 역사적으로 민족은 성차를 승인된 제도로 만들어 왔으며 이를 통해 여성들의 권리와 자원에의 접근을 제한해 왔다.

또한 상징적으로 성차는 국가 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힘의 한계를 규정하는 데 기여해 왔다.

보노짓 후세인 사건에서의 가해자 한국 남성이 “조선×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고 내뱉는 순간은 ‘자아’와 ‘타자’ 사이의 차별적인 관계가 젠더라는 축을 통해 확인되는 지점이며, ‘성’을 매개로 한국 남성의 지배권력이 행사되는 장이다. 또한 “새까만 자식”이라는 언설을 통해 보노짓 후세인은 폄하된 남성성, 젠더관계에서의 ‘여성’으로 위치 지워지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의 ‘한국 남성’이 재발견된다. 민족 간의 위계가 인종 간 위계관계를 넘어 성별관계로 표현되고 상대적으로 폄하된 여성성에 대한 부인 혹은 상대화를 통해 ‘한국’의 남성성(한국 남성)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동시에 그와 동행한 ‘조선×’이라는 언설은 ‘민족’이 ‘우리 여자’로 품을 수 있는 경계의 한계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한국 여성(성)에 대한 규제적 틀을 재확인 시켜준다.

따라서 보노짓 후세인 사건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사회의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가부장적 성차별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한국인/외국인, 여성/남성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도대체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구성되는가? 한국민에게 민족주의는 어떠한 모습을 지닌 채 작동하며 무슨 역할을 하는가? 민족주의는 누군가 ‘우리 민족’이라는 경계를 위반하는 순간 수면 위에 부상한다. 경계 위반자 혹은 경계 밖의 ‘비한국인’이라 여겨지는 자들에게 차별과 폭력이 이루어지는 순간, ‘민족주의’는 다시 구성되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봉합되는 잠정적 실체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지구화 시대에 근사한 ‘세계 시민’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상상 속에 있는 ‘한국민’의 기준은 이성애 백인 남성이며, ‘우리 민족’이라고 명명되는 집단은 결국 영원한 백인의 타자라는 역설이 다시 확인된다.

그 이분법적 역상을 거스르는 인간들은 상상의 경계 밖에 놓인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백인에 대한 열등한 존재, 혹은 세계 2등(또는 3등?) 시민으로 자신의 위치에 영원히 만족하거나 기존의 인식론적 틀 자체를 전복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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