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남성과 동행만 해도 무차별 폭언 다반사
외국 남성과 동행만 해도 무차별 폭언 다반사
  • 임유경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11 15:30
  • 수정 2009-09-11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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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금지법 제정 시급…파트너 자녀 등도 대상에 넣어야
‘더러운 여자’. 외국인과 동행하거나 사귀는 한국 여성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이다. 이런 무언의 폭력적인 시선이나 실제로 언어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은 “외국인만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 여자들도 간접적으로 인종차별을 겪고 있고, 여자라는 이유로 ‘양XX’ 취급까지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직업상 외국인과 동행이 잦은 한모씨는 지난 7월 인도인인 후세인 보노짓(28)씨와 버스 안에 있다가 한국인 남성 박모(42)씨로부터 “조선년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는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들었다. 후세인씨에게 인종차별적 폭언을 하는 남성을 제지하다가 당한 일이다. 이에 한씨는 후세인씨와 함께 가해자 박씨에게 인종차별의 죄를 물어 처벌하고 싶었으나 관련법이 없어 ‘모욕죄’로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 8월 31일 가해자 박씨를 약식 기소했다.

한씨와 후세인씨의 이런 용기가 결실을 맺어 최근 우리 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을 반성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외국처럼 ‘인종차별 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6일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법안 골자는 인종차별 행위자에 대해서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씨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종차별적 폭력은 외국인만 겪는 것이 아니다. 친구든 애인이든, 부인이든 가릴 것 없이 외국인 남성과 공공장소에서 같이 있던 한국인 여성들도 함께, 그리고 흔하게 겪는 일이다.

김수정(가명·31)씨는 흑인 남성 직장 동료와 지하철을 같이 탔다가 “흑인과 동행한 한국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톡톡히 경험”했다. 자신과 동행인인 흑인 남성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번갈아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중년 여성 중 한 명이 “부모가 사귀는 걸 알았으면 가만 놔뒀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손희정(가명·26)씨는 좀 더 심한 언어폭력을 경험한 경우다. 손씨는 3년 전 어느 겨울날, 어학당에서 만난 미국인 남자 친구와 신촌의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날 그는 50대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에게 “외국 놈한테 가랑이나 벌리는 양XX 같은 년”이라는 폭언을 들었다.

한씨는 “양색시·양공주·화냥년’ 등의 말은 많이 들어본 반면, 외국인 여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인 남성을 비하하는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며 가해자 박씨의 폭언에는 “한국인 여성이 다른 민족과 동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불순한 것이라는 가치가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종차별이 외국인한테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라며, 자신처럼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겪은 “내국인 여성들도 단순한 모욕죄가 아닌 차별금지 조항에 기대어 고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대 이나영 교수는 한씨와 후세인씨에게 일어난 이 같은 사건들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자 외국인 남성과 동행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임을 지적하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맞물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인종차별금지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야 하고,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할 때 외국인과 사는 파트너나 자녀들도 그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한 ‘통합’과 ‘인권 감수성을 키우자’는 외침이 부쩍 드높아졌다. 이런 외침들이 공허한 메아리로 남지 않으려면 차이를 존중하는 국민 의식을 높이는 노력과 함께 성·인종차별을 금지하는 구체적인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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