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무서워 우리 고통 눈감는 사회가 더 고통"
"남한에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무서워 우리 고통 눈감는 사회가 더 고통"
  • 임유경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04 11:40
  • 수정 2009-09-04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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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의심에 폭력남편·생활고…여성전문상담기관 도움 절실
“시누이가 처음 보는 자리에서 ‘간첩 아니냐’고 그러더라고요. 지금도 한 식구로 인정을 안 해줘요. 한번은 명절에 시댁에 갔는데 신랑이 형들이랑 싸우다가 칼을 쥐고 날 죽이겠다고 했는데 형들이 아무도 안 말리더라고요. 몇 번을 이리저리 쫓기다가 결국 한밤중에 쫓겨나와 무작정 걸었죠. 섣달 그믐날이어서 엄청 추웠는데 어딘지도 모르는 데를 하염없이 걷다가 십자가가 보이기에 교회 문을 두드려서 하룻밤 신세지고 겨우 살았죠.”

북한이탈 여성 진숙(가명·33)씨는 1시간 30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너무 괴롭다, 속상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결혼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남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기대가 시집식구와 남편의 무시, 이어지는 학대와 가정폭력, 그리고 생활고로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시집식구는 “북한에서 온 년 때문에 재수없다”며 걸핏하면 나가라고 했고, 남편은 혼인신고하고 4개월 이후부터 폭력을 행사했다. 남편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고 신용불량자란 사실을 애초부터 속였다. 때문에 정부에서 받은 임대주택이 행여 남편의 신용 때문에 잘못 될까봐 보증금을 뽑아 월세 지하방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이어지는 다른 북한이탈 여성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희(가명·34)씨의 경우는 북한이탈 여성이 얼마나 막다른 상황에 이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팬티까지 칼로 째고(찢고)…폭력이 너무 심하니까 내 집에서 내가 나왔어요. 애기아빠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안 나가니까. 결국 두 번째에는 내가 보증금을 빼서 나왔어요. 그런데 800만원 가지고는 보증금을 많이 못 까니까(못 내니까) 지금 정부에서 지원 받는 돈을 다 월세로 내고 있어요. 우울증도 있고 어린애가 있다 보니 일하기도 힘들고. 생활이 너무 힘들죠.”

수희씨는 정부에서 준 임대주택과 정착지원금을 다 날린 채 미혼모가 되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동거남은 처음부터 수희씨에게 가족사항, 학력 등 속이는 게 많았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던 동거남은 같이 파견근무 나간 여성과 중국에서 딴 살림을 차리고 생활비도 부쳐주지 않았다. 가정폭력을 피하려고 정부에서 준 국민임대주택도 포기하고 지하 월세방에 살고 있는 형편.

은미(가명·40)씨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을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위자료청구소송까지 한 경우다. 지난한 법적 싸움을 벌이면서 “정신적으로 병이 와 있는” 지경이다. 그의 남편 또한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고 조선족 여자와 “이중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다. 남편은 신용불량자였고 월급은 이미 가압류 돼 있었다. 은미씨가 정부에서 받는 돈으로 생활한 적이 많았는데도 남편은 월급을 다 갖다 줬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들 여성의 고통은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한층 가중되고 있다. 여성신문과 인터뷰한 여성들은 입을 모아 자신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주고 해결 방안을 찾아주는 곳이 없어서 더 고통스럽다”며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11시가 넘어 쫓겨나와 경찰서에 신고를 했어요, 112로. 이래 이래 해서 남편을 피해 나왔고, 지금 여기 위치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갈 데도 없다고. 그런데 ‘거기까지 갈 수 없다, 집에 들어가서 잘 해결보시라’며 전화를 딱 끊더라고요.”

이처럼 제일 먼저 일선 경찰서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가정 내 문제로 치부되어 적절한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다보니 경찰관들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고”, 법률기관을 찾기까지 여기저기 헤매기도 한다. 또 ‘남한의 법’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탈북자관련단체(북한이탈주민후원회나 숭의동지회,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등)에 상담을 요청해 도움을 호소해도 “가정문제에 깊이 관여하기가 꺼려진다”는 대답을 듣거나 사무적인 법률적 조언만 듣는 데 그치는 실정이다.

‘탈북여성인권연대’의 강수진 대표는 이런 북한이탈 여성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상담소’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들은 ‘내 편’ 이라고 생각해서 일반 여성단체보다 탈북자 단체를 찾아가지만 탈북자 단체들은 생긴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전문적인 상담을 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같은 탈북자로서 들어주기만 하는 거지 법률적 조언이나 심리적 상담까지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탈북자의 78%가 여성들이어서 여성들의 상담이 훨씬 많은데도 여성 전문 상담 기관이 없어 그들의 문제와 안타까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으로 입국하는 북한이탈 여성이 급증하는 추세인 데다가 최근엔 북한이탈 여성과 남한 남성의 결혼을 중개하는 업체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에 비례해 피해 여성도 계속 증가 추세다. 정부만 믿을 것이 아니라, 법률상담 지원 등 민간 차원에서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또한 정책지원 못지않게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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