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정권교체 바람 일으킨 여성들
54년 만에 정권교체 바람 일으킨 여성들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04 11:35
  • 수정 2009-09-04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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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거물급 의원 무너뜨려 민주당 압승 주도
여성 54명 당선 여성의원 비율 첫 10%대 진입

지난 8월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이 여당 자민당에 308석 대 119석으로 승리를 거두며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정권교체’가 화두가 된 이번 선거의 주역은 단연 젊은 세대와 여성이었다. 중의원 480명 중 초선의원은 158명으로 약 33%를 차지했다. 특히 대승을 거둔 민주당의 초선의원 비율은 46.4%. 이에 비해 자민당의 경우 4.2%에 불과했다. 또한 여성의원의 경우 2005년 선거의 43명보다 크게 늘어난 54명으로 전체의 11.3%를 기록, 일본 정치사상 여성의원 비율이 처음으로 10% 대에 진입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를 진두지휘한 민주당의 실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여성자객’이라 부르며 앞 다퉈 크게 다루기도 했다.

사실 ‘여성 자객’이란 말은 2005년 중의원 선거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게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26명의 여성 후보를 추천해 전원을 당선시키는 이변을 낳아 ‘고이즈미 여성자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당시의 여성 전략 공천이 당내 반발을 물리치기 위한 ‘반짝 이벤트’였던 데 비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 의원들은 국민이 바라는 ‘정권교체’의 선봉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선거에서 큰 활약을 보여 ‘일본 정치의 희망’으로 떠오른 주역들의 면모를 살펴본다.

후쿠다 에리코

‘약자의 대변인’으로 변혁 상징

일본 의료계 현실 개혁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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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움직였습니다. 일본은 변화할 겁니다. 여러분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당선이 확정된 8월 31일 새벽, 웃는 얼굴로 당선 소감을 밝힌 후쿠다 에리코(福田衣里子· 28·나가사키 2구)는 이번 총선이 보여준 변혁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전 방위상으로서 10선에 도전한 자민당의 거물급 의원 규마 후미오에 맞선 후쿠다 에리코는 선거기간 중에도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인물. 정치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움직인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 정치라면 ‘생명’을 구하는 것도 정치”라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호소였다.

2001년 대학 재학 중 혈액제제를 통해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3년 뒤 제약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단에 참여, 대변인을 맡아 C형 간염 감염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08년 마침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확정하는 순간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공개되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 피해를 입은 나가사키 출신으로 병마를 이기고 관료조직에 맞서 싸운 그는 공약에서 지역의료 붕괴와 감염환자지원법 등 일본의 의료 문제를 지적하고 ‘여성이 자립할 수 있고 젊은이가 일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오키 아키

공명당 대표 꺾어 파란 일으켜

교육·육아 행정에 최우선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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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공명당 당대표인 오타 아키히로가 버티고 있던 도쿄 12구는 ‘자(민당)·공(명당) 정권’의 상징과도 같은 지역. 7월 하순까지도 민주당 후보가 확정되지 못했던 이곳에서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 아오키 아키(靑木愛·44)다.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대표가 “직접 출전을 고려하기도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던 이 지역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후보’로서 적극 추천된 인물이다.

TV 리포터 활동으로 인기를 끌었고 6장의 싱글과 1장의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한 아오키 아키는 한 달 남짓의 짧은 유세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1일 50회를 목표로 2000곳을 돌며 가두연설을 하는 등 주민에게 다가갔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본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보육사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2003년 비례대표 중의원을 지낸 후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계속해왔다.

“교육이나 육아 현장과 관련 행정 간에 위기를 느껴 정치세계에 도전했다”는 그는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바꾸고 ‘국민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밖에 없다”며 일본의 변화를 역설했다.

에바타 다카코

도쿄대 교수 출신의 정치 신인

일하는여성 위한 개호보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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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최대 접전지로 꼽힌 도쿄 10구는 여·여 후보의 대결로 화제를 모은 지역. 이 곳에서 자민당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후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57)에게 맞선 이가 도쿄대 교수 출신의 정치 신인 에바타 다카코(江端貴子·50)였다. 당선이 확정된 후 그는 “정치를 바꾸고 싶다는 여러분의 마음이 승리로 연결됐다”며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의 기세에 밀린 고이케 유리코는 비례대표로 부활해 가까스로 의원직을 유지했다.

에바타 다카코는 개호보험(한국의 노인요양보험에 해당) 제도의 개선을 첫째 공약으로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육아를 도와주던 어머니가 병으로 간병이 필요하게 됐을 때 관공서에서 ‘가족과 동거하는 상태라면 개호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답해 어머니를 위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 그는 “일본의 개호나 고용의 제도는 모두 여성이 가정에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고 있다”며 “육아와 개호를 경험한 여성이 정치의 당사자가 될 필요성을 느꼈다”며 정치 진출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고바야시 지요미

자민당 실세에 3전 4기 성공

신사참배 비판한 사회운동가

 

훗카이도 5구에서 당선된 고바야시 지요미(小林千代美·40)는 3전 4기의 도전 끝에 승리를 거둬 화제를 모았다. 그의 상대는 자민당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의 수장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64). 8선 의원이자 전 관방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고바야시와 마치무라의 대결은 2000년 제42회 중의원 선거부터 시작, 2003년과 2005년까지 잇달아 차점을 기록한 바 있다. 2003년에 소선거구에서 낙선 후 비례대표를 통해 당선돼 문부과학위원회와 법무위원회·후생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제빵회사의 세일즈맨으로서 일하는 동시에 노동운동과 평화운동, 선택적 부부별 성 쓰기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뛰어든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 평화 의원 연대회의’ 참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는 아시아 국가 사이의 신뢰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일본의 우경화에 비판의 목소리를 전한 바도 있다.

미야케 유키코·다나카 미에코

전 총리 맞서 접전 벌인 2人

비례대표 통해 부활 당선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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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군마 4구)와 모리 요시로(森喜朗·이시카와 2구) 두 전 총리와의 대결에서 선전한 미야케 유키코(三宅雪子·44·사진)와 다나카 미에코(田中美繪子·33)도 이번 총선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각각 1만2000표와 4500표의 근소한 차이로 패한 후 비례대표를 통해 당선됐다.

미야케 유키코는 후지TV 기자 출신으로 자민당 중의원으로 50년대 관방장관과 노동상을 지낸 이시다 히로히데(石田博英)의 손녀이기도 하다. 그는 “민영 방송국 기자로서의 경험과 시점으로 국민의 시선으로 생각하는 ‘모두의 정치’를 만들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힌 바 있다.

정치 신인인 다나카 미에코가 13선 의원인 전 총리에 맞서 4500표 차이로 아깝게 패한 이시카와 2구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최접전지였다. 다나카는 유세기간 중 정권교체 깃발을 탄 자전거를 타고 거리 곳곳을 누비며 모리 전 총리를 위협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여행사 계약직 사원을 거쳐 현 나고야 시장의 의원 시절 비서로 일한 바 있다. 당선 후 “전직 파견 사원으로서 ‘격차 사회’의 시정을 위해 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재협조=다카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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