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아스포라가 돼버린 여자들
21세기 디아스포라가 돼버린 여자들
  • 채혜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9.04 10:35
  • 수정 2009-09-0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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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에 담아낸 유학생·입양아·혼혈아 딜레마
"새롭게 걷기 위해선 낡은 짐을 벗어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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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글로벌 시대 이면에는 그 누구도 될 수 없는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 존재한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을 떠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이주민이 급증하는 오늘날에는 난민이나 이민자들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유학이나 이민, 비즈니스로 인해 수많은 인류가 유목민이 되어 국경을 넘고 있다.   

주수자의 소설집 ‘붉은 의자’에는 디아스포라가 되어버린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을 떠났으나 예기치 않은 폭력과 사랑의 간격에서 혼돈을 겪는 유학생 상현(붉은 의자), 정체성의 상실에 휘말려 고통을 받는 입양아 제인(연어와 들고양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속할 수 없어 뿌리 없이 부유하는 고독한 영혼의 수지(버펄로 폭설)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에는 23년이라는 오랜 타국 생활 경험이 있는 주수자 작가의 시선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김혜련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HK연구교수는 여성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이 책 속에서 여성과 관련된 세 가지 선율을 찾아낸다. ‘길 위의 여자들’ ‘자기 목소리 듣기’ 마지막으로 ‘낡은 짐 벗기’가 그것이다.

‘붉은 의자’의 상현이 성추행 사건을 겪은 후 늘 묶어두었던 자신의 다리를 스스로 풀고 방을 나오듯이, 저자는 “결국 삶이란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여정을 떠나 걷는 발걸음이 가벼울 때도 있고 무거울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서게 되어있다.

“사라지는 바람 끝머리에 빈 나무의자 하나가 건물 모퉁이에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상현은 생각에 잠긴다. 저 돌고 도는 바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어디선가 멀고 먼 곳에서 시작한 미세한 움직임이 한 줄기의 바람이 되었다가, 수없이 돌고 돌며 먼 거리를 달려오는 동안 점점 힘이 세져 마침내 무시무시한 폭력을 가진 태풍이 되는지도….(‘붉은 의자’ 중)”

단편 ‘새’에는 ‘낡은 짐 벗기’가 주요 모티브로 존재한다. ‘새’의 여자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해방의 단초를 발견하게 되는데 저자는 이 여자가 맞는 해방을 통해 “자신의 길을 새롭게 걷기 위해서는 결국 낡은 짐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 작가의 소설을 두고 ‘화해 가능성을 향해 가고 있는 작품’이라 설명한 김혜련 교수는 “주수자의 등장인물들은 세계와 자신에 대한 인식에 눈을 떴을 뿐, 이제 비로소 용서와 화해를 위해 무엇인가 시도할 것을 결심할 때가 왔다”고 분석했다.

“…여자는 그 새가 어디로 갔는지 또 어떤 새였는지 모른 채 잠이 들었다. 낡은 짐을 벗어던질 때 같은 가벼움을 느끼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잠이 든 여자의 입가에 설핏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창밖에선 날이 훤히 밝아왔다.(‘새’ 중)”

높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톤으로 국경 주위를 부유하는 여성들을 철학적으로 성찰한 작가의 시선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여성으로서의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붉은 의자 (주수자/ 송이당/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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