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어려움 다 딛고 반석 위에 우리 집 지었어요"
"갖가지 어려움 다 딛고 반석 위에 우리 집 지었어요"
  • 임유경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9.08.28 11:22
  • 수정 2009-08-28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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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6년에 걸쳐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문가 못지않게 뛰어다녀
"좀 더 많은 여성들에게 따뜻하고 힘찬 손 내밀 기반 되길" 기원

 

한국여성의전화 새 집에 모인 ‘내 집 마련’의 주역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dosage for cialis site cialis prescription dosage
한국여성의전화 새 집에 모인 ‘내 집 마련’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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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세 평짜리 옥탑방에서 출발한 ‘한국여성의전화’가 26년 만에 246평짜리 ‘내 집’을 마련했다.

전화기 두 대를 놓고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전화 상담으로 시작한 한국여성의전화는 현재 25개 지부와 5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전국적인 여성단체로 성장했다. 이런 전통과 규모를 가진 여성단체가 그간 셋집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선 기자는 9월 3일로 잡혀있는 정식 집들이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새 집을 찾아갔다.

새 집은 신축 빌라가 가득 들어찬 은평구의 한적한 주택가 언덕바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뜻 봐서는 이웃 빌라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아담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러나 여성단체의 가난한 살림살이와 열악한 근무환경을 익히 알기에 여성의전화의 새 집이 ‘대저택’처럼 느껴졌다. 대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 ‘기적’을 이뤄낸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들일까.

“집 새로 짓지 말고 사라고 권하고파”…돈 모자라 땅 되팔기도

“집을 새로 짓지 말고 지어진 걸 사라고 권하고 싶어요.”

깨끗하고 쾌적한 사무실에서 마주앉은 정춘숙(46) 상임대표에게 6년간에 걸쳐 내 집을 마련한 소회를 한마디로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정작 자신들은 번듯하게 집 잘 지어놓고 남이 집을 짓는 건 말리고 싶다니.

장장 6년에 걸쳐 새 집을 지은 사연이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던 까닭이다. 정 상임대표는 “한 고개 한 고개 어렵지 않은 고개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어려움이 컸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돈’때문이었다.

한우섭(54) 건축위원장은 ‘건물을 사지 않고 신축을 하게 된 것부터가 실은 돈이 없어서’였다고 했다.

“용도에 맞는 건물을 갖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건물을 사려면 당장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돈을 모아가며 장기 계획을 갖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새로 건물을 짓는 거라는 쪽으로 합의가 된 거죠.”

돈을 모아가며 땅을 사다보니 땅을 마련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개미처럼 모아” 1년에 한 필지씩 세 번에 나눠 산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마련한 땅에 건축허가가 날 때까지 또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화영(33) 건축담당 국장은 “역시 돈이 없어 어려운 땅을 산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평당 1000만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땅을 살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선정된 지금의 집터가 유일했어요. 그런데 ‘주거환경개선사업에 관한 조례’ 적용을 받다보니 세 번에 걸쳐 구입한 땅을 합해(합필해) 그 위에 하나의 건물을 지을 수가 없고 3층 이상으로 못 짓는 땅이었어요. 2006년 6월 조례가 폐지되기까지 기다렸는데 이 조례가 한 의원의 발의로 1년간 연장이 돼서 또다시 1년을 더 기다려 2007년 7월 건축허가 승인을 받아야만 했어요.”

돈 없는 서러움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건축비가 모자라 어렵게 구입한 땅 한 필지를 팔아야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건축 후원을 해 준 고마운 분들을 허탈하게 만들었고, 건축 설계도 두 번이나 해야 했던 일을 이들은 여전히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수많은 얼굴이 스쳐지나가면서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어떻게 마련한 땅인데. 또, 설계 후원을 해준 ‘공간’ 건축 관계자들이 얼마나 열과 성의를 다해 만들어줬는지 잘 알면서 다 완성이 된 그 멋진 설계 도면을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한다는 얘기를 하러 갔을 때는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들이 어려움을 겪은 데는 “비전문가에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탓도 컸다. 건축공법에 문외한이었던 그들은 토목공사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이화영 국장은 땅을 살 때 집터가 있는 지역의 토질이 암석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느 노래에도 나오듯 “반석 위에 지어질 집”을 상상하며 막연히 즐거워했지 그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이 동네 땅이 암반이 많다보니 무진동 폭파 공법으로 토목공사를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이 동네 주민들은 다 ‘코어드릴’ 공법으로 하자고 합의가 돼 있었던 거예요. 폭파공법으로 하면 소음이 발생하고 옆 건물에 금이 갈 우려가 있으니까. 그걸 모르고 우리가 기계를 들여오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현장으로 쫓아와 이의를 제기해서 공사 중단을 했죠. 현장 소장은 못하겠다고 도망가고요. 앞집 할아버지는 자기네 집 건물에 금이 갈 경우 10억원을 배상하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난리셨고.”

또, “비전문가다보니 건설업자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몰라” 사소한 것도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공정이 더 늦어진 것은 당연지사.

전문용어로 가득한 건축 관련 서류나 생소한 건축 관련 규정도 그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였다. 이화영 국장은 남들 다 휴가 간 빈 사무실에서 “외국어 같은 전문용어로 뒤덮인 서류들과 씨름을 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여성단체에 대한 편견도 그들을 힘들게 했다. “여성단체가 들어오면 땅값 떨어진다”는 이웃의 불평을 접했을 때는 적잖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건축허가에 막혀…암반 많은 땅에 지역주민 민원까지 거세

이렇게 힘든 고비들을 헤쳐 오며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이화영 국장은 한 마디로 ‘무모한 용기가 통했다’고 했다. 뚝심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별별 일을 다 겪기 전에는 무모한 용기로 충만했어요. 저희 단체 이사이신 이찬진 변호사가 후원과 법률 자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건설회사 법무 담당인 나도 복잡하고 골 아파서 집을 안 짓는데 무슨 배짱으로 집을 짓느냐’고 했지만 죽기 살기로 하면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나 함께한 이들의 헌신이 무엇보다도 큰 힘이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활동가들은 박봉의 활동비를 쪼개 최소 100만원부터 몇 백 만원까지 건축 후원금을 냈다.

설계 후원을 해줬던 설계 회사는 ‘말도 안 되는’ 급여를 받아가며 건축후원금을 내는 등 헌신적인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 감동을 받아 수십 번의 건축 회의를 마다 않으며 열과 성을 다해 설계 도면을 기부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뛰어온 중앙과 지부의 회원들의 힘도 컸다. 회원들은 건축회비를 모금하고, 바자회 물품을 모으고, 건축 후원금을 내준 분들께 줄 그림 작품도 만들고, ‘드림팀’을 만들어 후원을 요청하는 일까지 그야말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뚝심, 열정 그리고 헌신

마침내 ‘기적’으로 보답받아

이런 뚝심과 헌신을 이끌어내고 유지시킨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 예방 강사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김문미씨는 “여성운동에 대한 열정”이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처음 회원 가입을 했을 때는 여성인권, 여성운동에 대해 잘 몰랐지만, 단체 활동을 통해 여성운동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 한다.

“활동가들이나 대표님들의 여성운동에 대한 열정이 저희 같은 회원들에게도 옮아왔기 때문에 일체감을 가지고 ‘내 집’, 즉 ‘우리 집’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함께 하게 됐어요.”

‘여성운동을 향한 열정’과 함께 더 발견한 것이 있다. 함께 꾸었던 꿈,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이 그것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허허벌판 집터에서 매년 건축 기원 행사를 했다. 두 번은 폭우, 한 번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 참석자가 적으면 힘이 빠질까봐 평회원들도, 지부에서도 다들 기를 쓰고 참석했다.”

이화영 국장이 들려준 얘기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불가능해보였던 일을 해낸 그들이 새로 꾸는 꿈은 무엇인지 새 집과 함께 임기가 시작된 정춘숙 대표에게 물었다.

“좀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각 지부의 지역운동을 더 활성화시킬 수 있는 풀뿌리 여성운동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가까운 미래의 청사진이다. 구체적으로, 좀 더 지역 주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업들도 계속 벌일 거고, 각 지부들도 각자의 지역에서 좀 더 네트워킹을 강화할 수 있도록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여성경제 교육이나 여성주의 교육 같은 대중교육 사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싶다. 지하 교육장도 그래서 만들었다.”

새 집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여성의전화가 ‘안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미는 손을 따뜻하게 잡을 수 있고, 좀 더 여성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여성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올 여름 장맛비가 스며드는 바람에 물난리를 겪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고생하는 다른 여성단체들도 하루빨리 ‘내 집’ 마련의 감격 속에 안정되고 쾌적한 공간을 ‘소유’하길 빌었다.

여성의전화는…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6월 창립됐다. 여성운동 대중화의 일환으로 그동안 쉬쉬하며 개인사로 간주했던 가정폭력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 이슈로 부각시켜 반향을 일으켰다.

1987년 구타 당하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개설하고, 1993년 성폭력특별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여성인권정책 생산, 활동가 성장, 회원 활동력 활성화의 3대 활동 방향을 설정하고, 데이트 폭력 문제 사회적 환기, 여성주의 상담 운동, 여성폭력 없는 지역사회 만들기를 전국 25개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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