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신을 안 하는 게 당연한 사회에선 낭패 보기 십상
‘R.S.V.P’는 나 스스로의 약속 준수…삶의 주체성 부여

지난달 친구의 딸이 결혼을 하였다. 300명 정도의 손님을 예상했는데 500명쯤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식구들은 밥도 못 먹고, 손님들도 앉을 자리가 없어 수라장이었단다. 또 얼마 전에는 모 기관에서 외국 강사 초청 강연회를 300명 정도 오는 행사로 준비했는데 30명 남짓한 손님이 왔다. 강사에게는 큰 결례였고 준비 팀은 남은 김밥을 처리하느라 애썼다.

미국에서 30여 년을 지내는 동안 거의 모든 초대장에 ‘R.S.V.P’가 써있는 것을 보았다. 프랑스어 ‘Re′pondez s′il vous plaˇit’의 약자로 ‘회신을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한국의 많은 초대장에는 회신을 요구하는 글귀가 없다. 내가 초청장에 ‘회신을 바랍니다’라는 것을 쓰자고 제안했더니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은 회신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다고 하고 안 오는 경우 또는 미리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를 한국에서 많이 본다.

왜 우리는 회신을 안 하는 것이 대중화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확실하게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환경의 지배 혹은 기분에 맡긴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더욱 그렇다. 결혼한 여성들은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주관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아니고 내가 내 미래의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내게 보이는 것일까? 직장 면접시험 같은 중요한 약속이었다면 그 시간은 꼭 지켰을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에 무엇이 가능할까? 남의 눈치를 봐가며 반응하곤 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내 삶을 지배하지 않게 할 것이다. “못 간다”라는 회답도 솔직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자신감도 없고 자유가 없다는 생각에 시달리는데, 자신의 삶을 자신이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감과, 파워와, 자유함은 자기 삶을 자신이 책임질 때 생긴다. 약속을 정확히 하고, 그것을 지킬 때, 내가 내 삶의 디자이너이고 내 시간의 경영자라는 것을 체험하게 한다. 이러한 습관은 우리의 시간과 돈의 낭비를 막을 것이고 스트레스도 줄일 것이다.

회신을 요구하는 문화, 또 회신을 하는 문화는 각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약속하게 하여 자신과 상대방의 삶에서 책임감을 갖게 하는 습관을 키운다. 약속이란 내 삶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R.S.V.P’를 요구하는 문화를 우리 여성들이 앞장서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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