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개의 그림과 58개의 에세이가 전하는 풍경
이 책은 뭐랄까, 첫인상이 ‘앙증맞다!’
한마디로 작으면서도 갖출 것은 다 갖춘 미니북이라고 할까나. 겉표지 그림은 또 어떠한가. 가능하다면 ‘연인’(98~99쪽)을 무시하자.
자, 그럼 화가가 우리에게 그림으로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귀를 쫑긋 세우며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작가는 화가다. 이름은 박태(Tae, Park). 남잔 줄 알았으나 실은 그녀가 맞다. 그녀는 국내엔 생소하나 미국에선 꽤 유명한 한국 출신 미술계 작가라고 한다. ‘요정’ 시리즈와 인상적인 풍경화로 잘 알려진 인물.
나는 책 속의 71편 그림부터 우선 감상한 뒤 비로소 58편의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게 이 책의 ‘쓸모’다. 쓸모는 길을 걷다가 발견하는 한적한 공원의 나무 그늘 아래도 좋고, 아니면 친구나 애인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예쁜 장소, 이를테면 북카페, 커피 전문점, 술집 등 어느 곳인들 쓸모가 있다.
왜? 액세서리, 구두, 핸드백, 옷만이 아니고 코디가 되는 책으로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모가 아닌 매력이란 작가의 눈이 기억하는 시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비에 젖은 파리와 프라하 거리,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숨결, 여행, 낭만, 사랑, 이별, 추억 등이 지워지고 대신 나의 여행과 사랑 그리고 이별이 기억으로 채워진다. 이 점이 돋보이고 매력적이다.
다시 책의 겉표지 그림으로….남자는 포장마차에서 술 한 잔을 하고 싶은데 여자는 피곤한지 눈을 감는다. 전혀 다른 시선으로 연인은 바라보고 있으나 현실은 같은 곳에 발목을 붙잡아 두는 그림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저자는 연인들을 이렇게 해석한다.
‘남자는 저 멀리 현실로 시선이 향해 있고, 여자는 남자의 팔에 안겨 눈을 감고 있다. 현실에 눈을 감고 사랑하는 남자의 팔에 가만히 기대어 모든 걸 맡기는, 어쩌면 그 순간의 평화가 영원하기를 기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략)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때만은 축복의 시간이다. 그들이 각자 내일 어떤 길을 선택해 갈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 사랑이면 그만인 것이다.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과 슬픔이 한 화면 속에 있어서 그리는 동안 마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와 다르게 화가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해석하는지 재미를 발견하려면 글부터가 아니라 그림부터 감상한 후에 한 장 한 장 읽어 볼 일이다.
그래 그랬는가. “벗이여, 길을 가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거든 오랫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감고 그 풍경을 떠올리게나”(153쪽)라고 당부하는 걸까.
‘다 잊으니 꽃이 핀다’ (박태/ 글로세움/ 1만원)